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히브10.1-10.마르3.31-35)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평생 살아가면서 이혼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또 상대방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떨까요? 그런데 어떤 연구 결과를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부부도 평생 살아가면서 200번 정도 이혼을 생각하게 되고, 또 50번은 상대방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극도의 혐오감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 부부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될까요? 바로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 때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삶 안에서 고통과 시련도 커지게 됩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는 두 사람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미련한 사람은 상대방을 적으로 여겨서 항상 결점을 없애려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을 전우로 여기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함께 어려움을 짊어집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지혜가 가득해야 합니다. 이 지혜는 자신이 먼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지혜롭고 완전한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모습도 받아들이면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인생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삶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단순히 요구하는 삶이 아닌,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랑의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하는 혈연관계를 뛰어넘어 내게 요구하는 사람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라고 말합니다(마르 3,22). 성모님과 친척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친인척이 찾아왔으니 다른 것을 다 뒤로 하고 먼저 만나라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군중이었습니다. 영적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또 육체적으로도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 모두 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요구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전해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 주님의 진정한 형제, 누이,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요구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요구를 들어주는 삶을 살고 있나요?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카렌 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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