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수요일
(히브12.4-7.11-15.마르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오늘도 또 다른 예수님께서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장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성모님의 동정성과 관련해서 개신교 신자들이 자주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되는 성경 구절이 있는데, 바로 오늘 우리가 봉독하는 마르코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겨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코 복음 6장 3절)
그렇다면 과연 성모님께서 예수님 이외에 또 다른 자녀들을 요셉과의 사이에서 출산하신 것인가요?
장로교와 일부 개신교 종파에서는 이 복음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수용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요셉과의 사이에서 예수님 외에도 4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낳았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동방 정교회는 해석이 좀 다릅니다. 요셉은 전처와 사별하고 마리아와 재혼했다. 여섯 명의 자녀들은 요셉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무염시태, 평생 동정 교리를 굳게 믿고 선포하는 우리 가톨릭교회는 이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성경을 사랑했고, 성모님도 극진히 사랑했던 예로니모 성인의 해석을 따릅니다.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형제’라는 단어는 굉장히 폭넓게 사용되었다고 이해합니다. 형제! 하면 단순히 한배에서 태어난 친형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촌 형제, 오촌 형제, 팔촌 형제도 형제라고 칭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 공동체나 수도 공동체 안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고 칭하지 않습니까? 그런 언어 관습 안에 해석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마을 사람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지혜와 경륜이 묻어나는 말씀을 당당하게 선포하시자, 다들 긴가민가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들의 눈앞에 등장하신 메시아 하느님을 몰라보고 인정하지 않는 중대한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오늘도 또 다른 예수님께서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장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 눈앞을 스쳐 지나가십니다.
우리의 둔감함과 완고함, 불신앙과 폐쇄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오신 메시아를 몰라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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