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3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창세4.1-15.25.마르8.11-13)
<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18세기 성인인 프랑스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님은 매일 성당을 찾아오는 농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농부는 특별한 기도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평화로운 모습을 늘 오랫동안 성당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 농부에게 신부님께서 물었습니다.
“형제님께서는 기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도대체 성당에 몇 시간씩 앉아서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 행복해하지요.”
신부님께서는 이 대답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사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대화라고 하면서, 늘 일방적이었습니다. 그냥 ‘나’만 말하기 바빴습니다. 심지어 그분을 보지도 않고 말이지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요?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껴져서 대화를 그만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대화를 나눠야만 상대와의 사랑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연애 중인 연인은 하루 종일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있으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기쁨을 체험합니다.
참 기도는 나의 일방적인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 즉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과의 시선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과 사랑의 깊이가 더 생기고 그 안에서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앞선 농부처럼 말입니다.
서로 바라봐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는데, 우리는 과연 어디를 보고 있을까요? 혹시 입으로 하느님을 외치면서 다른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하면서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빵의 기적도 행하시고…. 표징의 숫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것만 바라보고 있으니 모든 것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기도를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래서 서로 행복한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인생을 사는 데는 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기적인 듯 사는 것’ 또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듯 사는 것’.(알버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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