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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지금은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의 세례명을 지을 때 처와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나의 제안은 ‘토마스 모어’, 그분은 유명한 영국의 재상이자 「유토피아」라는 책을 쓴 대 학자요 부자였습니다.
세속에서 좋은 것 다 지녔으면서도 내면으로 이것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승의 자유 안에 살아가신 성인. 내 세속적 욕심에 딱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는 안 된다고 나섰습니다. 우리 귀여운 아들에게 어떻게 처형당한 이의 이름을 붙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영국 왕 헨리 8세가 앤 볼린과 재혼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나는 처를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대통령도 토마스 모어, 여든이 넘게 무병장수하시는 덕이 높으신 내 옆방 변호사님도 토머스 모어가 아니냐?” 그제서야 제 처도 동의했습니다. 살아서도 복받고 죽어서도 하느님 품안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같은 필부필부들의 꿈이요 욕심입니다.
주일마다 아니 매일 새벽마다 우리는 열심히 성당 마당을 밟고 다니며 이 꿈을 빌고 또 빕니다. 하지만 시몬 바르요나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른 우리 스승의 삶과 죽음을 보면 별로 복받은 분은 아니지 싶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어부나 세리, 거지, 절름발이, 창녀 같은 보잘것없는 이들의 스승 노릇을 하다 그나마도 3년 만에 제자의 배반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분. 그분 앞에 서면 이승에서 잘 먹고 잘 지내다가 죽어서까지도 ‘나’라는 개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원히 하느님 옆에서 방긋 웃고 있는 것이 구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께서 시몬 바르요나에게 물으시듯 나는 나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삶의 마지막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요, 아침 출근길마다 내 뒤에서 성호를 그으시는 어머니의 아들이요, 내 처의 남편이요, 내 아들, 딸의 아버지요… 베드로는 스승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했지만, 스승은 너희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한 끼만 굶어도 배가 고프고, 한없이 욕심내는 존재의 한계에 갇혀 있지만 또한 나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선, ‘김모’라는 개체성을 넘어선 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김형태 요한·변호사, 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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