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3주일-지금이 수확의 때요, 구원의 때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요한4,23)
때는 정오 무렵, 먼 길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 십자가에서처럼 여기서도 목이 마르셨습니다. 시카르라는 마을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는 한낮에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과 마주치십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려 마을에 갔습니다. 먼저 여인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 좀 주시오.” 구세주께서 아쉬운 사람이 되어 먼저 대화를 청합니다. 멋진 대화법입니다.
1.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녀 안에 근원적인 갈증이 밝혀집니다. 우물의 물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입니다. 주님은 놀랍게도 당신이 그 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흥건하게 담겨있는 담수를 누가 마시겠습니까? 주님은 갈증을 일으키시고 또한 시원한 생명수가 되십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시면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지게 됩니다.(14절) 주님은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2. 주님은 뜬금없이 그녀의 남편을 불러 함께 오라 하십니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는 무례한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요즘 같으면 성희롱으로 고발될 발언입니다. 여인의 근원적인 갈망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나 봅니다.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알아맞히는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깁니다. 갑자기 예배 장소에 관해 묻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예배(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여기 이 산인지, 예루살렘인지를 묻습니다. 주님은 명쾌하게 답하십니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1~23절)
주님의 말씀은 이런 뜻이 아닐까요? 참된 예배, 거룩함은 장소나 공간과 관련이 없다. 너의 태도와 행위에 달려있다. 진실한 맘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너는 충분히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질 것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을 충만하게 만들어라. 여인이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자, 주님은 거침없이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당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구원은 없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지금 여기 계시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 계시겠습니까?
3.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35절) 거두어들이는 것만이 수확이 아닙니다. 저는 농사짓지도 않는데 지금 여기서 먹고 마십니다. 수확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형국입니다. 수고는 다른 이가 하고 그 수고의 열매는 우리가 거둡니다. 그 반대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다른 이가 맛보도록 하는 겁니다. 씨 뿌림과 수확이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의 입장에 즉각 설 수 있다면 하나가 됩니다. 씨 뿌리는 이와 수확하는 이가 다르지만, 함께 기뻐합니다. 이것이 하늘나라를 사는 법도입니다.
4.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예수님을 전합니다.(39절) 그물과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첫 번째 제자들 같습니다. 주님을 아는 기쁨이 너무 커서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바오로 사도,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긴다는 바오로 사도, 그리스도의 힘이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자신의 약점을 자랑한다는 바오로 사도를 닮았습니다.(2코린 12,9 참조) 여인은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들추면서까지 동네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합니다.
구원은 유보될 수 없습니다. 구원을 사는 사람은 지금 여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충만한 구원의 때임을 아는 것입니다. 전방위로 만나는 모든 이와도 통교를 이룹니다. 사순 시기이지만 부활의 기쁨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어둠 속을 걸어나가니 새벽이 동터옵니다.
서춘배 신부 (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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