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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향 가는길

< 위령성월에 생각나는 사람 >

                                 < 위령성월에 생각나는 사람 >

                             '아베마리아’를 들으시며 하늘나라로…

유난히 11월이 되면 많은 그리운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그 죽음의 마지막 순간들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마지막 인사를 해주시던 그 모습들. 10년 동안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마지막 이별을 하며 살아왔다.

‘호스피스’란 현재 주어진 이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며 이 세상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빠른 시간 안에 슬픔을 극복하고 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과도 또한 동행을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그 분들의 삶을 주님께 기도드린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 중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고 하셨던 동화작가 윤 요한 선생님의 환한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내 기억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윤 요한 선생님과의 만남은 2006년 1월 대구가톨릭대학병원의 한 병실에서 시작되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많은 고통이 찾아오고 있을 때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고통 때문에 얼굴은 어둡고 딱딱한 모습이셨다. 그런데 수녀라는 이유로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보조 침대에 앉아 기도드리기 위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데 “하느님나라가 정말 있는가요?”하는 질문을 하셨다. 많은 환자들이 물어오는 질문이라 차분히 앉아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지금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 시간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하느님이 주신 시간이라고 말씀 드리고 이 육체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시간이며 온 몸으로 기도드릴 수 있는, 그 어떤 기도보다도 간절하고 완전한 기도의 시간이라는 말씀도 드렸다. 그분은 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집중해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기도도 많이 못했고 성체를 모셔도 열심히 모시지 못했고 성사생활도 충실하지 못했다고 하시며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받으시겠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병자성사를 권유받으셨으나 꼭 해야 되나 하시면서 미루어 왔었다고 했다.

그 다음날 신부님께 말씀드려 고해성사, 병자성사, 봉성체를 하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그 후로는 일주일에 두 번씩 봉성체를 해 드렸다. 봉성체하고 난 뒤에 심한 가래기침으로 성체를 불경스럽게 만들까봐 걱정하시면서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시면서 그분의 얼굴은 다시 동화작가의 그 순수한 모습으로, 그 마음도 순수한 믿음으로 변화되면서 그 병실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전해주셨다. 고통스러운 시간들 앞에서 이렇게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시는 유머도 지니신 멋있는 할아버지로 변하셨다.

1997년도 폐암 진단을 받으시고 오른쪽 폐 절단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가는데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아베마리아 음악이 수술실로 향하는 긴 복도에서 그 불안한 마음을 없애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수술 후 통증도 느끼지 않았으며 성모님의 도움을 체험하셨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천국을 향할 때도 그 음악을 들으며 가고 싶다고도 했다.

1인실에서 오랫동안 입원하고 계셨기 때문에 자녀분들은 경제적인 부담이 커서 보훈병원에 병실을 신청해두었다고 하면서도 우리 병원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가족들과 의논하여 우리 병원 6인실로 옮겨 생활하기로 했고, 환자에게는 내가 따로 말씀 드리기로 했다.

“6인실에 가시면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선생님의 그 기쁨을 그 사람들에게 선물로 드리자.”고 하시니 좋아하시면서 당장 옮기시기겠다고 하셨다. 6인실로 옮기는 날, 직접 가서 병실 옮기는 것을 도우고 창 쪽 침대에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침대에 바로 누우시면서 “이곳이 명당자리네.”라고 하시며 저 산과 하늘이 만나는 골짜기를 보시면서 좋아하셨고 그 골짜기에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 봄꽃이 필 때 하느님나라에 가고 싶다고 하시면서 행복해 하셨다.

모든 고통은 미소로 잊어버리셨고 모든 고민은 웃음으로 날려버리셨던 윤 요한 선생님은 병실을 옮기시고 3일 만에 병세가 악화 되시어 1인실로 옮겨 임종 전까지 아베마리아를 들으시면서 죽음의 그 긴 터널을 가족들의 따뜻한 돌봄을 받으시면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의식이 깨끗하셨기 때문에 죽음의 그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에게 웃음을 주셨던 요한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시기 마지막 날에도 나의 손을 잡고는 그동안 고마웠다며 웃어주셨고, 그 모습은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 역시 일주일에 두 번 아니면 세 번씩 3개월 동안의 그 소중한 만남을 통해 기쁨과 웃음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 당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면서 마지막으로 출판된 동화책(2005년도 출판)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그 소중한 책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 자리하고 있어, 한 번씩 펼쳐 읽으면서 그 순수한 마음을 만나곤 한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많은 영혼들과 웃으시면서 살아 계실 윤 요한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을 위해 기도드린다. ‘주님! 윤 요한 선생님과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정길선(카타리나)|수녀,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용성성당 방문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