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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향 가는길

다시 울려 퍼지는 구성진 ‘연도’ 가락

다시 울려 퍼지는 구성진 ‘연도’ 가락… 새롭게 대중화해 계승해야
서울 연령회 연합회 ‘연도 가창교육’

▲ 연도 가창교육을 듣는 신자가 ‘상장 예식’ 책을 펴고 있다.

“그리스도님 이 교우를 천상낙원으로 받아들이소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서 올 제~”
화요일 저녁마다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2층에선 구성진 가락이 울려 퍼진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연도’ 소리다. 연도는 연옥 영혼을 위해 가톨릭 신자들이 부르는 상·장례 기도다. 먼저 떠난 이를 위한 기도라는 보편적인 가톨릭 전통에 우리 고유 가창 방식이 어우러진, 한국 교회만의 독특한 무형문화유산이다. 이처럼 소중한 연도의 계승과 보전을 위해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회장 이규훈)는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연도 가창교육’을 재개했다. 위령 성월을 맞아 연도 교육 현장을 찾았다.

되살아난 연도의 기쁨
연도는 오랫동안 이 땅에 신자들과 함께해온 한국 교회 장례 문화의 ‘진수’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는 바람에 장례식장에선 더는 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고, 마침내 다시금 연도를 노래할 수 있게 됐다. 3년 동안 쌓였던 연도에 갈망이 그토록 컸던 것일까. 교실은 연도를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로 꽉 차있었다. 교구 29개 본당에서 온 연령회원 78명이었다.

학생들은 10월부터 두 달간 연도 가창 방법부터 입관ㆍ출관 예절, 운구 등을 12회에 걸쳐 체계적으로 배운다. 다소 피곤할 법도 한 저녁 시간이건만, 노인이 대부분인 학생들은 빛나는 눈으로 강사와 교재를 번갈아 보며 수업에 열중했다. 힘차게 연도 구절을 따라 부르고, 수시로 공책에 필기하는 이들 모습은 진지했다. 본당 연령회를 대표해 배움을 얻어간다는 데에 남다른 책임감을 느꼈으리라.

35년 동안 연령회 활동을 해온 배수한(데레사, 망우동본당)씨는 신입 회원과 함께 연도 교육을 받고 있다. 함께 수업을 듣고, 부족한 부분은 직접 알려주는 ‘도제’ 방식을 통해 어엿한 연령회원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연도가 허용된 덕분에 최근에는 장례식장에도 함께 데려가 실습도 시키고 있다. 배씨는 “연도는 다른 종교에는 없는, 가톨릭교회만의 문화”라며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연도 대신 사도 예절로만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며 “다시 연도를 할 수 있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고 덧붙였다.

“본당 신자들끼리는 서로 식구처럼 친하게 지내는데, 그런 분이 주님 곁으로 가실 때 마지막 기도를 할 수 있다는데 감사하죠. 고인들이 생전에 원하던 장례 미사와 연도를 다 해줄 수 있어 저도 기뻤고, 유가족들도 좋아하셨어요.”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연도
김영국(베드로, 포이동본당)씨도 30년간 연령회 활동을 해온 베테랑이다. 김씨는 “다시 연도를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면 이 기회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씨는 “연령회원은 대부분 고령이다. 코로나19로 더욱 활동이 어렵게 됐다”며 “60대면 연령회에서 막내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 젊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려면 긴 연도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인 호칭 기도를 빼거나 모든 성인이 아닌 한국 교회 대표적인 성인 일부만 호칭하는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성인 호칭 기도를 1분 내외로 간략하게 챙기면 연도가 20분 안팎으로 끝날 거예요. 이런 연도를 대중화하면 젊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배울 수 있고, 참여도 더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을 기획한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이규훈(빈첸시오) 회장은 “다시 연도를 할 수 있게 돼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방역수칙 때문에 연령회원들이 책 읽듯 가락 없이 연도 기도문을 읊어야 했어요. 그 느낌이 잘 살지 않아 아쉬웠죠. 이 때문에 교구 연합회에서 연도를 녹음해 CD로 제작하기도 했어요. 그렇게라도 연도 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하려고요.”

이 회장은 “다시 연도를 통해 유가족들이 위로받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뭇하다”고 말했다. 또한, “연령회가 고인의 마지막 길에 끝까지 함께하며 연도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비신자도 감동한다”며 “연도로 선교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는 오는 11일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유가족 위로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선종한 이들의 유가족 1500명이 참여하는 자리다. 이날 미사에서 연합회는 이들을 위한 연도를 노래한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연도대회도 매년 진행했다”며 “조만간 가능하면 연도대회도 재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당진 합덕본당 연도, 미래 문화자원으로 육성된다
한국 교회의 고유한 유산인 연도가 정부 지원을 받아 문화자원으로 육성 받게 됐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난 9월 ‘2023년 미래 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 중 하나로 대전교구 당진 합덕본당(주임 허숭현 신부)의 연도를 지정했다. ‘미래 무형문화유산 발굴·육성 사업’은 지역의 가치 있는 비지정 무형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올해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2026년까지 각 지역 무형유산 100종목을 선정하고, 지자체와 협업해 지역 대표 문화자원으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사업별로 연간 최대 2억 원을 지원해 전승 환경 조성과 전승 체계화를 도울 전망이다. 앞서 국립무형유산원은 2015년 올해의 무형유산 도시로 당진시를 선정해 문화유산을 조사했다. 그리고 합덕본당 연령회를 연구하며, 연도의 가치에 주목했다. 유산원은 조사 보고서에서 “연도는 전통 음악성을 가지고 토착화된 대표적인 한국 교회 성가로 충분히 우리의 무형 유산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연도 속에는 박해와 천대를 이겨낸 정신이 스며들어 있고 부모와 조상을 위하는 효 사상이 배어있다”며 “또한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사상이 녹아있고, 자신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영적 활력이 내재해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