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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곰삭한 맛

< 길 위에서의 생각 >

< 길 위에서의 생각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 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 위에 쓰러진다

- 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