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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이웃사랑)

< 흉년 단상 >

< 흉년 단상 >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삭풍이 분다.

벌판은 길게 누워 있지만

그 풍경이 그리 쓸쓸하지 않다.

다시 생명을 품는 비움이기 때문이다.

바람 불고, 눈 오고, 별빛이 내리고,

다시 바람이 불 것이다.

겨울은 동물과 나무들만 잠드는 것이 아니다.

대지도 꿈을 꾼다.

논은 살아 있는 최고(最古)의 유물이다.

농사는 늙고 볼품없는 땅에서 해마다 생명을

피워올리는 경이로운 역사(役事)였다.

햇빛과 바람과 물에 인간의 땀을 섞는

심오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마땅한 다른 벌이가 없는 농투성이의

한 해 살림살이는 논농사의 풍과 흉에 달렸다.

벼농사가 올해는 흉작이다.

쌀 생산량이 30년 만에 최악이다.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기상 악화로 작황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흉년임에도 모두 걱정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나라의 재앙이었지만 언론조차도

이를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

현지 쌀값도 오르지 않는다.

재고가 쌓여 벼를 저장할 창고가

모자랄 지경이니 오를 턱이 없다.

남녘에서는 농민들의 탄식과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벼를 논에다 산 채로 갈아엎고,

벼를 쌓아 길을 막고 있다.

그래도 빈 술병만 쌓일 뿐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다.

몇 해 전 영천에 내려가

농부 시인 이중기씨를 만났다.

그의 시집 속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

온통 농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농업 만년설이 녹아내린다’는 시는 이렇다.

“아버지는 잘못된 역사 발전에 백의종군하느라/

궁상 한번 없이 죽어라 땅만 파던 땅강아지였다./

나달나달해진 경전, 내게 논밭을 물려주신/

아버지 무덤에 1인 시위하러 간다.”

논밭을 물려준 아버지 무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시인.

이제 농업은 나라경제의 걸림돌이고,

농민은 천덕꾸러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밥의 힘으로 역사를 지켜왔다.

쌀은 흔했지만 진정 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쌀이 남아 돌고,

농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꾼들이 도시로 빠져나가자

들녘에서는 신바람과 설렘이 사라졌다.

농사를 짓는 것은 경건한 일이었다.

벼는 논에서 키우는 ‘한해살이 자식’이었다.

그런데 남아도는 쌀을 동물의 사료로 먹이자는

무엄한 시대가 도래했다.

농민들의 핏빛 구호는 허공을 맴돌고,

지금 농촌은 점점이 흩어져

외딴 섬이 되어가고 있다.

그 속의 농민들은 시대에 버림받은 난민들이다.

농촌이 멀어지고, 농민들이 잊혀지고 있다.

2010년 기고한 글

- 경향신문 김택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