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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 신앙의 나그네 길

<인간 삶의 바탕>

<인간 삶의 바탕>

- 구상 시인 -

 

각설, 이때에 저들도

황금의 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

진실이나 믿음, 사랑과 같은

인간살이의 막중한 필수품들은

낡은 지팡이나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서로 다투어 사람의 탈만 쓴

짐승들이 되어갔다.

세상은 이론의 무리들이 판을 치고

이에 노예근성이 꼬리를 쳤다.

그 속에서도 시나이산에서 내려올

모세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외롭지만 있었다.

자유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후유, 멀고 험하기도 하다.

(아론;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데 앞장을 섬)

이상은 〈출애굽기 별장(出埃及記別章)〉이라는 졸시(拙詩)로서 널리

알려진 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하던 이집트에서 빠

져나오다가 그 지도자 모세가 신탁(神託)을 받으러 시나이산에 올라

간 새 그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 즉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는

고사를 오늘날 우리의 세상살이 ㅡ 물질과 기능 위주, 황금만능 풍

조ㅡ에 비유해 쓴 것이다.

실상 오늘날 우리의 세상살이 역시 모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감각적인 것만을 소중해하고 소유하고 즐기고 누리려 들 뿐 눈에 보

이지 않는 삶의 참된 보람이나 기쁨엔 모두가 눈멀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론 영위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안 보이는 삶의 필수품들을 인간은 먼저 갖춰

야 한다.

저 금세기 초반 프랑스의 비행기 조종사이며 작가였던 생텍쥐페리

의 유명한 동화 《어린왕자》의 마지막 대목, "벽의 왕자가 지구에 내

려와 친해진 여우와 작별을 하는데, 여우는 자신이 간직한 소중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면서 "세상 사물의 본질적인 것은 육안으론 안

보여,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지."라고 일러준다.

실상 저 여우의 지혜대로 사물의 본질, 즉 사리나 도리에 속하는

것은 심안(心眼)으로 헤아리고 깨우쳐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는 바로 이 마음의 눈이 멀어 있다고 하겠다.

가령 우리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불가결한 법이라는 것도

그 눈에 보이는 조문이 눈에 안 보이는 인간의 사리나 도리를 바탕

으로 제정되고 또 집행되지 않으면 그것은 약육강식이나 권세가의

허울 좋은 올가미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 미국의 신자유의 제창자

인 본 하이에크 교수는 "법은 본래 있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

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라고 갈파한다.

그리고 덧붙여 설명하기를 "법을 인간이 임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의회제도의 선진국인 영국에서 의회가 자체적으로 결

정한 것을 법률이라고 부른 우연에 그 출발이 있었는데, 이러한 국

회의 다수결로 만들어지는 법률에는 편의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많

기 때문에 이것을 일률적으로 법이라고 부는 데서 현대의 법률의

식의 혼란이 왔다."고 그는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가 말하려는 바 엄정한 의미의 범이란 인간의 사리나

도리 중 사회규범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을 찾아내어 성문화(成文化)

하는 것이지 어떤 특정의 편의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법

률, 가령 권세유지의 목적과 같은 강제기능에다 소속상 만족만 채운

다면 그것은 형식상 법이지 본질적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오늘날까지의 법률 제정이나 그 개정이 저러

한 진정한 법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성찰이 되며, 또한 현재도 서로

가 자파의 편의대로 법의 개정과 그 집행의 시비 속에 있다는 그

자체가 저러한 인간의 사리나 도리에 어긋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나

하겠다.

이러한 우리의 상태나 상황은 결국 국민들에게 준법의식의

저하와 혼미를 일으켜 법은 '있으나 마나'의 무법과 불법에 나아가

게 한다. 그리고 모든 범죄와 정죄(定罪)가 그저 '운수가 사나워

서'. '재수가 없어서' 그리 된 것으로 되고 만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그렇듯 추구하고 찬미하는 자유라는

것도 역시 저 인간의 사리나 도리의 이행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것은

본증적·동물적 충동에 치닫고 방자(放恣)에 떨어져 그 자신은 물론

이려니와 그 사회의 파탄을 가져온다.

우리의 오늘날 저러한 자유의 남용이 이 사회의 혼란과 문란을 얼

마나 야기시키고 있는가를 실제 체험으로 겪고 아는 바다.

되풀이가 되지만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는 물질만으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는 안 보이는 인간의 사리나 도리의 이행이 이

를 지탱해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인간 삶의 바탕인 사리나 도리는 낡은 지팡이

나 헌시짝처럼 팽개쳐버리고 황금송아지, 즉 황금만능 풍조에 침몰

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부정과 불법 비리와 비행이 판을 쳐서 아주 예사로울

정도인데, 그러나 한편 어떤 예기치 못할 사회적 참변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에 국민 모두가 떨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을 회생 치유할 처방은 무엇인가. 그것은 별다른

게 아니라 저 구약성서의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에게 윤리강령

(십계명)을 받아 그것이 새겨진 십계판으로 황금송아지를 내리쳐 부

쉈듯 우리 역시도 각자가 인륜을 깨우치고 국민윤리 생활을 확립하

는 길 외에 딴길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의 윤리나 규법의식 회복을 아무리 부르짖어

도, 또한 너나없이 입담으면서도 아직 국가적인 대책기구나 연구기

관 하나 없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저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이를

물리적 힘으로 퇴치하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그것 역시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는 것이지 눈에 안 보이는 그 범죄의

바탕에는 눈먼 탓이리라. 하지만 이제라도 정부는 인륜과 인문의

지도자들을 모아 이 인륜의 나락(奈落)속에서 국민을 구출할 대책을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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