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열매를 맺는다
( 2사무 5,1-3. 콜로 1,12-20. 루카 23,35ㄴ-43)
말씀 살아내려는 마음과 실천이
사람들 마음에 평화의 씨앗 심어
이 땅에 평화의 열매 맺어질 때
참 평화 이뤄진 하느님 나라 완성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표현한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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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씨앗
예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세상의 나라와는 어떻게 다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음의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는 당신 왕국을 폭력 위에 세우지 않으신다. 그분은 로마를 상대로 군사혁명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힘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 힘은 하느님의 가난이며 하느님의 평화로서, 예수는 그 안에서 유일한 구원의 힘을 보셨다.”(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나자렛 예수」)
그럼 하느님의 평화는 어떻게 이뤄질까요? 예수님은 삶으로 그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사람들이 수군대며 비난하는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또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사랑과 섬김으로 조화를 이루시고, 상처를 치유하심으로 연결하시고, 사람들을 감동시켜 변화하게 하십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투쟁을 예방하고 조화를 이루십니다.
하느님은 씨앗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그의 나라가 망가지고, 백성들이 그의 이름을 잊었을 때, 당신 자신을 씨앗으로 심으십니다.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당신 자신을 씨앗으로 심으셨고, 그 씨앗은 그것을 땅속으로 내리누르려고 하는 돌들을 밀어내는 생애를 보냅니다.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율법주의의 돌들과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억압하는 돌들을 말입니다.
그 씨앗이 가장 큰 일을 해 낸 것은 마지막 돌을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 의해 굴려졌고, 사탄에 의해 봉인된 죽음이라는 돌이었습니다. 잠시 동안 그 씨앗은 땅 속에 묻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땅 속 어디에선가 하느님의 그 씨앗이 움직이더니 그 돌들을 밀어내고는 싹을 틔웠습니다. 땅은 진동했고 무덤 앞의 바위는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 13,23)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내 영혼의 스승들」이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저자가 영향을 받았던 분들에 대해서 짧게 정리한 책인데요. 대략 열 명 정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 나온 분들이 마틴 루터 킹과 간디였는데요. 말씀을 실제로 살아가는 그분들의 삶이 저를 반성하게 했습니다.
간디가 자기 소유를 보자기 하나에 다 담아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예수님의 말씀과 모범에 따라 우리가 특별히 지키기 어려운 말씀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삶으로 살아낸 것도 그렇습니다. 저는 어려운 말씀을 제 수준에서 지킬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 실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간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 용기가 있었고, 폭력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비폭력으로 저항합니다.
마틴 루터 킹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간디에게서 비폭력 저항이라는 것을 배워 삶에 적용합니다. 백인들이 죽인다고 협박하고,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테러를 감행해도 비폭력으로 저항합니다.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 같고, 현실적이지 않고, 무력하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길로 계속 나아갑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비폭력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만이 진정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저항이 법률이나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차별을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사람의 마음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폭력과 사랑으로 저항했고, 통치자들의 마음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 차별 폐지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게 하고,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친구가 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사람의 겉이 아니라 속도 변하게 했고, 한두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만 것이 아니라 한 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자는 그것을 영혼의 힘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 영혼의 힘이 어디서 길러지고 만들어졌을까요?
제 생각에는 정말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보는 데서 영혼의 힘이 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적당히 타협해 말씀을 살아가는 척하지 않고, 정말로 말씀을 살아 보는 겁니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내면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나옵니다. 그렇게 말씀을 살아내려는 마음과 실천이 있는 곳, 곧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많은 평화의 열매를 맺으리라 생각합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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