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묵시록5.1-10.루카19.41-44)
<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십니다 >
이제 우리가 그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드릴 차례입니다!
혹시 누군가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고 엉엉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 그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돌아서서 남몰래 홀로 흐느끼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가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과 상처가 극심해서...
갈 길 잃고 방황하는 자녀들, 잘못된 길이 분명한데, 끝도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자녀들 때문에 밤낮없이 기도하며, 대성통곡 터트리는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라는 게 뭔지, 자식이라는 게 뭔지...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도 우십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 때문입니다. 동시에 바로 오늘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리로 가면 멸망의 길이 뻔한 데도, 그 어떤 타이름이나 경고의 질책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그 길로 직진함의 끝이 얼마나 참담하고 혹독한 것인지를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이시기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루카 복음 19장 43~44절)
사실 루카 복음서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자비의 책입니다. 인간말종 자캐오에게 구원을 확증하셨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예리코의 소경에게 새 삶을 선물하셨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던 나병 환자들에게 보송보송한 피부를 되찾아주셨습니다. 당대 유명한 죄 많은 여인의 마음을 받으시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결핍, 우리의 방황, 우리의 죽음을 결코 견딜 수 없었던 주님께서 오늘은 우리 때문에 우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왕의 왕, 삼라만상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가련한 한 인간, 바로 ‘나’ 때문에 우신다는 것, 얼마나 감사롭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계신 주님께서 또 다시 우실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천년 전 영적인 눈이 먼 동포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도성,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끝끝내 우상숭배에서 돌아서지 않는 유다를 바라보시며 우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를 보시고 또 우십니다.
미운 사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들 때문에 울기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우는 것 같습니다.
그가 내 곁을 떠나갈 때 웁니다. 그가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그가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웁니다. 그가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끝도 없는 방황과 탈선을 거듭할 때 우리는 웁니다. 그가 홀로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웁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 말씀하셨다.”(루카 복음 19장 41절)
예수님 눈물의 이유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 때문이었습니다. 당신께서 극진히 사랑하셨지만, 끝끝내 돌아서지 않고 멸망과 죽음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매몰차게 당신을 거부하고, 끝도 없이 뒷전으로 그분을 밀어내는 오늘 우리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드릴 차례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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