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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묵시록5.1-10.루카19.41-44)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생각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키 작은 자기 모습에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키가 작고, 친척들도 키 큰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키 큰 것이 정상일까요? 키 작은 것이 정상일까요?

‘왜 키가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이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스스로 변화될 수 있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미래의 자기 모습을 희망하며 지금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생각이란 말과 행동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제가 입고 있는 수단에는 많은 단추가 있습니다. 총 22개의 단추를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단추를 잘못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맨 마지막에 하나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채웠던 단추를 모두 풀어서 다시 처음부터 잘 채워야 합니다.

생각 역시 말과 행동을 하기 전이 첫 번째 단추를 채우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잘한 생각일까요?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이 아닌, 제대로 된 특히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우십니다.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단순히 성전의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셔서 우신 것일까요? 아니면 슬픔을 가져다주는 어떤 특별한 상황이 있었던 것일까요? 성전이 아닌 당신을 향한 유다인의 모습을 보시고 우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구원의 왕이고 평화를 가져다줄 임금이십니다. 그러나 유다인은 이런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구원의 때를 알아보지 못하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들의 왕을 배척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된 것입니다. 이런 도시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잘못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구원의 길로 가지 못하는 자녀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쉬웠던 것입니다.

말과 행동의 첫 번째 단추인 ‘생각’을 제대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도록 쓸데없는 생각이 아닌, 제대로 된 생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는 주님께 슬픔을 드리는 우리가 아닌, 이제는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이 세상에는 사랑과 감사에 굶주린 사람이 빵에 굶주린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마더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