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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자기 비움>

 

<자기 비움>

오늘날 세계의 징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인간의 해방을 갈망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가치입니다.

인간은 모든 예속과 모든 억압에서의 자유를 바라고,

기아와 질병 등 육체적 고통에서의 해방,

정신적 불안에서의 해방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재생을 바라는 것이요,

완전한 인간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실은

자유를 얻었는가 하면 또 곧 잃습니다.

자유란 아주 깨지기 쉬운 것같이 보입니다.

자유는 물론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 평화를 주는 자유,

빛으로 마음을 환히 밝혀 주는 자유,

불안 없이 모든 이를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열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로마 8,21)라고

표현한 그 자유입니다.

또한 이에 앞서 예수님 친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고

하신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살며

그 말씀으로 해방된 자유입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이 같은 자유를 희구하는 사람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적 이유, 경제적 이유, 사상적 이유

혹은 종교적 이유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유를 다시 종합해서 말한다면

안전 보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현재의 삶을

보장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이요,

가진 것보다 더 갖고 싶은

욕망의 보장을 원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우에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보장하는 여러 가지 안전으로 나타나고,

국가의 경우에는 이른바 안전 보장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보장의 욕망이 자유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보장을 위해 구축한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더욱 자유롭기 위해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진리를 향해, 정의를 향해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보장은 근본적으로 닫혀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과 같이

보장은 소유(Haben)요, 자유는 존재(Sein)입니다.

안전한 보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존재는 소유를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유는 존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보는 보장은 아닙니다.

하느님께는 무보장이 보장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자유를 원한다면

보장을 바라지 말아야 하며

가장 열려 있는 상태를 취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내적 자유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자신을 보장하고 있는

그 보장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 보장을 떠나서 비울 때,

무보장을 받아들이는

비움(Kenosis)의 자세를 취할 때,

그리고 그 자체로써 나를 따를 때,

너는 완전한 인간이 됩니다.

그것은 곧 완전한 의미의 자유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