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청한 솔로몬>
솔로몬은 하느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장수(長壽)나 부귀나 기타 세속적인 것을 청하지 않고
지혜를 청하였습니다.
하느님은 그를 칭찬하시면서
지혜를 주시어 가장 지혜로운 왕이 되게 하실 뿐더러
청하지도 않은 부귀와 명예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백성을 지혜롭게 다스림으로써
명성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마르 6,30-34)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께로 달려왔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모두 무언가를 주님께 청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병의 치유라든지 좋은 가르침, 건강, 장수, 승진,
가정의 평화 등등 개인적으로도 청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정치와 경제 발전이 잘되고 더 나아가
통일 이룩하고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각각 청하고 싶은 것을 포괄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청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이 행복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산상 수훈 또는 산상 설교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 5장 3절부터 7장 끝까지에 이릅니다.
이 안에는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상 설교의 서두에
예수님은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또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복팔단(眞福八端)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즉, 건강, 장수, 부귀영화가 들어 있지 않고,
우리가 세상에서 불행하게 보는 것,
박해와 모욕이 행복에 들어 있습니다.
뿐더러 마태오 복음 진복팔단에 상응하는 말씀은
루카 복음 6장에 보면 더 노골적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여기 반(反)하여,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루카 6,20-26)
왜 이렇게 주님은 우리와 정반대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가치관의 근본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가치관의 근본은 현세의 물질입니다.
주님은 하느님을 가치관의 근본으로 하여
인간과 인생을 보시고,
우리는 물질적인 척도를 인간과 인생을 봅니다.
주님이 보시는 인간은
결코 유물론이나 진화론적인 지성을 갖춘
고등 동물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고
그것은 죽어 썩고 말 운명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 같이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고귀한 부르심(소명)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우리의 인생관은 현세적입니다.
어느 인생관이 더 합리적이요, 소망스럽습니까?
우리 모두는 마음 깊이에서부터
참사랑과 생명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죽어 썩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그런 사랑과 생명을 누가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까?
사랑 자체이시고 생명 자체이시며 구원이시고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 그분만이
우리에게 이것을 줄 수 있고,
그분 자신이 바로 우리가 마음속 깊이에서
갈구하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말씀대로
그분께 가서 쉬기까지는 언제나 편안치 못합니다.
레옹 블로이(Leon Bloy)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빵 없이도, 술 없이도 살 수 있다.
집 없이도 살 수 있고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신비 없이는 살 수 없다."
이 신비는 하느님이십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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