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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인 면에서는

보다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달에 가서 산책하는 광경을

안방에 앉아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도 정말 달구경을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짚신에 갓을 쓰고 한양 천리 길이라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인데 지금은 서울과 부산을 하루면

편히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현대식 고층 건물하며

거리에 물결치는 자동차가 넓은 의미로는

다 우리의 것입니다.

참으로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돈만 있으면'이라는 조건이 문제입니다.

이 좋은 세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습니까?

일할 자리가 없어서 굶는 사람,

일을 하고도 응당한 품삯을 받지 못해서 굶는 사람,

불의의 재난으로 굶는 사람,

서울 변두리나 산등성이에 깔려 있는 판잣집들, 움집들,

그 밖에 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이

10년을 일하면 떳떳이 살 수 있는

집과 자본을 마련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말단 공무원, 하급관리, 교육자, 회사원, 기술자 등

각 분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박봉에 생활고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른바 4대악 또는 5대악이라는

윤리병에 걸린 사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양심을 속이든가 팔지 않으면

하루하루의 생활도 이어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그 병폐를 통탄하여 각종 홍보기관은

이를 고발하는 자기사명에 충실하고자 하며

정부는 사회악 근절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악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부에서 쓰는 약이 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계몽과 징계뿐입니다.

그러나 도둑 하나를 순경 열이 못 당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징계만으로 죄악을 뿌리 뽑을 수 없습니다.

윤리병은 역시 윤리라는 약으로 고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현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윤리 덕목은 무엇보다도 정의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덕행이며,

모든 악의 씨앗을 제거하는 해독제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1코린 13,1~13)에 있듯이

사랑은 남을 시기하지 않으며 남에게 오만하지 않으며

사리사욕에 급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두루 퍼져 있는 사회에서는

중상모략이나 불화에서 불화로 끝나는

정치 선전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불미스러운 것을 얼핏 보면

한 단체와 한 단체의 싸움인 것 같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사회 전체를 썩어 들어가게 할 정도로 큽니다.

그러므로 그 단체가 정당이라면

국민을 사랑하는 원칙에서 정치 활동을 해야 하고,

기업체나 회사라면 종업원이나 회사원들의

억울한 희생을 딛고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당신의 살과 피, 생명 전부를 남김없이 내주셨습니다.

참사랑은 거기에 있습니다.

풍요한 생활을 하면서 남는 것이 얼마나 조금 떼어

남에게 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잘 살자는 것이며,

잘 살되 정당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의 사회는 정의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정의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존중하는 것으로서

각자가 자기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가정의 영예로운 생활을 위해

일하면서 정당하게 살 권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권리를 침해하여 남에게 돌아갈 몫을 착복하고

남의 희생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빨리 잘 살게 되는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나도 남도 다 한꺼번에 망하게 합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정당한 품삯을 지불해야 할 것이며

일하는 사람은 일한 만큼의 품삯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부정부패의 정도는 한 사회가 이와 같은 정의의 이념에서

멀어져 가는 거리로써 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경시하고 있는 일이지만

이상 말한 정의의 이념은 한 가정안에서도 적용됩니다.

한 가족의 생활 책임을 맡은 사람은

자기 가족 모두에게 분수에 맞는 생활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가장이 한 달 봉급을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 개인의 쾌락이나 사치를 위해 탕진한다면

국가법의 제재는 받지 않는다 해도 윤리적인 면에서는

정의의 정신을 짓밟는 것이 될 것입니다.

가장이 매일같이 요정이나 술집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자정을 알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집 문턱을 들어서기 일쑤라면

그 가정은 파경에 이를 것이 뻔합니다.

또 그러한 가정 파탄은

결국 사회악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정의의 질서가 바로 잡히고

사람들이 서로 남을 도와주는 사랑의 정신으로

유대를 맺을 때, 우리는 모두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정부패에 썩어 없어지고 마느냐,

아니면 정의와 사랑의 이념을 실현시켜 잘사느냐를

선택해야 할 막다른 골목에 들어 서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정의와 사랑의 정신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으로써

가르쳐 주신 윤리입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를 실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모두 헛된 일인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썩은 사회야말로 우리의 가장 무서운 원수입니다.

부정을 하지 않고서는 못사는 사회라 해도

우리만은 부정을 하지 말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참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운동을 누군가가 시작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말고 우리부터 실천에 옮깁시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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