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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향 가는길

<삶과 죽음>

 

 

                                    <삶과 죽음>

 

부부는 다투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옥신각신 맞붙었습니다. 10년 만에 처음 해본 싸움이었습니다. 남편은 아침밥도 거르고 휑하니 나가버리고, 아내는 뽀로통하게 이불을 덮어썼습니다. 남편을 보내고서야 아내는 살며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밥을 챙겨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미안하다고 해야지, 라며 수화기를 들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남편일 거라며 흐뭇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방금 댁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하셨습니다." 아내는 이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죽음은 예고가 없습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입니다. 집을 나서며 나눈 아침 인사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작별의 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운명을 알았더라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할 일도 그냥 소홀히 흘러보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건 다 알지만 당장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고 한번은 오리라 생각하지만 지금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사제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삶을 후회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좀 더 잘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나 남은 건 후회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고, 반성해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입니다. 살려달라 애원해도 살릴 길이 없고, 안 가고 싶어도 갈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인생에서 쓸 수 있는 시간들을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죽는 건 무서운 게 아닙니다. 죽는 것을 잊고 사는 게 무서운 일입니다. 살면서는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는데도 삶만 볼 뿐 죽음은 보지 못합니다. 삶과 죽음이 달리 있지 않습니다. 삶도 죽음의 일부고 죽음 역시 삶의 연장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살 때도 죽는 것처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도 사는 것처럼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로 잘 사는 거고, 진짜로 잘 죽는 것입니다.

 

맺은 인연들을 소중히 살피고, 오늘이 마지막인 듯 애틋하게 사랑하며 살다 가야 합니다. 다들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들이고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그 애틋함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가 안 남습니다. 그게 죽어서도 사는 길입니다.

 

가을에 지는 단풍은 붙어 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떨어질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떨어진 나뭇잎이 생명의 밑거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떠오르는 태양도 아름답지만, 저녁에 지는 노을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자신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주변까지 아름답게 물들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가을의 단풍처럼 아름답게 피었다가 아름답게 떨어져야 합니다. 우리도 지는 노을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야 합니다. 죽은 뒤에도 세상 속의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죽은 뒤에도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도록 아름답게 살다 가야 합니다. 참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며 살아온 사랑의 삶은 영원히 남아 천국의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가을 하늘입니다.

 

- 김강정 부산교구 삼랑진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