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창세49.1-2.8-10.마태1.1-17)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무슨 짓을 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실험실의 개는 나중에는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에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상자로 옮겨줘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웅크린 채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개만 그럴까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즉, 인간 역시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부정적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떤 시도나 노력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는 것을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주장했습니다.
셀리그만은 학습된 무기력 개념을 통해 지금의 무기력한 상황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그는 전문직의 사람부터 평범한 일반 사람까지 많은 사람을 상담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무기력에 빠져서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충분히 그 시간을 피하려 하는 나의 변화가 필요했음을 깨닫습니다. 그것도 커다란 목표가 아닌 지금 당장 자신이 시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기력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보면, 계속 안 좋은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주변 국가 중 가장 힘이 없어 강대국으로부터 점령당하고, 유배 가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끝일까요? 이스라엘은 힘없고 고통과 시련의 삶만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손길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으로 무기력의 상황에 부닥쳐질 수도 있었지만, 하느님을 보려 하고 함께했던 이스라엘의 조상 덕분에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제 드디어 예수님의 탄생으로 구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면서 포기하고 좌절하지만, 절대로 바뀌지 않는 상황이란 없습니다. 내가 바뀌려고 노력하고, 또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때 자기에게 주어지는 삶은 주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결코 무기력의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비겁한 자는 평생에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자는 오직 한번 죽는다(김만술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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