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창세49.1-2.8-10.마태1.1-17)
<하느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 족보!>
살아생전 제 선친께서 마치 보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시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족보책이었습니다. 총 두 권이었는데, 엄청 두꺼웠습니다. 족보는 언제나 황금빛 보자기에 고이 싸여 장롱 속 제일 안전한 곳에 보관하셨습니다.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다닐 때 마다 선친께서는 다른 것은 다 처분하셨지만, 족보만큼은 제일 먼저 챙기셨습니다.
명절 때마다 제사가 끝난 다음 선친께서는 저희를 앉혀놓은 다음, 족보를 꺼내 드시고 일장훈시를 하셨습니다. 우리 남원 양씨가 얼마나 대단한 성씨인지, 우리 가문에서 얼마나 많은 위인들을 배출했는지, 그러니 가문에 먹칠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하루는 선친께서 하도 강조하셔서 족보 첫 장부터 쭉 넘겨본 적이 있습니다. 족보 안에는 시조가 되는 분부터 시작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조상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습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해 높은 공직에 오른 사람들은 따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족보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존중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 사가 역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상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그저 낯설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들만 쭉 나열되어 있는 예수님의 족보를 자신의 복음서 제일 첫머리에 소개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의도로 그랬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족보상에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은 곧 이스라엘의 산 역사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 축복과 사랑의 표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흥망성쇠, 기쁨과 희망, 고통과 상처의 흔적이 곧 예수님의 족보인 것입니다.
물론 족보 안에는 감추고 싶은 이스라엘의 흑역사, 오점을 남긴 이름들도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없이 나약하고 죄 많은 우리 인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시기 위해 우리 인간 세상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신 것입니다. 완벽하게 인간 세상 속으로 육화강생하신 것입니다.
그냥 편하게 고상하게 계셔도 아무 문제 없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굳이 사람이 되셔서, 때로 구질구질하고, 때로 상처투성이, 오물투성이인 인간 세상 안으로 완벽히 진입하셨다는 표현이 예수님의 족보인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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