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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 기다리는 행복 > ​ 온 생애를 두고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수수한 옷차림의 기다림 입니다 ​ 겨울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처럼 나의 言語를 익혀 내 복된 삶의 즙을 짜겠습니다 ​ 밀물이 오면 썰물을 꽃이 지면 열매를 어둠이 구워 내는 빛을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 나의 친구여 당신이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더 이상 먼 곳을 헤매지 마십시오 내가 길들인 기다림의 日常 속에 머무는 나 ​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소임입니다 ​ - 이해인 ​ 더보기
< 11월의 나무처럼 > ​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께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네요 ​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 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 - 이해인 ​ 더보기
< 부끄러운 고백 > 참회 "이러면 안되는데" 늘 이렇게만 하다가 한 생애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 나 자신과의 곡선의 관계 시원하고 투명하길 바라지만 살아갈수록 메마르고 복잡하고 그래서 참 부끄러워요 좀 더 높이 비상할 순 없는지 좀 더 넓게 트일 수는 없는지 좀 더 밝게 웃을 수는 없는지 나는 스스로 답답하여 자주 한숨 쉬고 남몰래 운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기도의 일부로 받아들여 주신다면 부끄러운 중에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치는 이 시간은 눈물 속에도 행복하다고 바람 속에 홀로 서서 하늘을 봅니다 - 이해인 더보기
< 가난한 새의 기도 >​ ​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 오직 사랑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 내 삶의 하늘에 떠 다니는 흰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 - 이해인 ​ 더보기
'좀 어떠세요?' '좀 어떠세요?' ​ 좀 어떠세요? 누군가 내게 묻는 이 평범한 인사에 담긴 사랑의 말이 새삼 따듯하여 되새김하게 되네 ​ 좀 어떠세요? 내가 나에게 물으며 대답하는 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온하네요- ​ - 이해인의 에서 - 더보기
슬픔 속 작은 기도 슬픔 속 작은 기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시] 슬픔 속 작은 기도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향을 피워도 눈물뿐 꽃을 바쳐도 눈물뿐 우린 이제 어찌해야 하나요? 단풍이 곱게 물든 이 가을에 너무 큰 슬픔이 덮쳐 우린 마음놓고 울수도 없네요 어떡하니? 어떡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답은 없고 공허한 메아리뿐 ! 숨을 못 쉬는 순간의 그 무게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고 두려웠을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어 그냥 그냥 두 주먹으로 가슴만 치고 있네요 한번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참히 깔려 죽은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이여 이 땅에서 다신 이런 일 안 생기게 최선을 다할게요 그대들 못 다 이룬 꿈들을 조금씩 사.. 더보기
< 마지막 손님이 올 때 > 위령 성월 ​ 올해도 많은 이들이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주님 눈물의 샘이 마를 겨를도 없이 저희는 또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떠난 이들의 쓸쓸한 기침 소리가 미루어 둔 기도를 재촉하곤 합니다 ​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올 마지막 손님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아직 살아 있는 저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헤아려 볼 뿐입니다 ​ 그 낯선 얼굴의 마지막 손님을 진정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까요? ​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가 상상보다는 어렵더라는 어느 임종자의 고백을 다시 기억하며 저희 모두 지상에서의 남은 날들을 겸허하고 성실한 기도로 채워 가게 하소서 ​ 하루에 꼭 한 번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화해와 용서를 먼저 청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깨어 있게 하.. 더보기
< 가신 이에게 > 위령 성월 ​ 갈꽃 같은 얼굴로 바람 속에 있었습니다. ​ 춥고 어두운 땅 밑에 누워 하얗게 사위어 가는 당신이 지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당신이 ​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깊고 맑은 영혼의 말을 건네 주십니다 ​ 당신의 말은 나비가 되어 나의 하늘에서 춤을 추고 그것은 또 꽃이 되어 내 마음밭에 피고 하나의 별이 되어 어둔 밤을 밝힙니다 ​ 시시로 버림받고 시시로 잊혀지는 당신의 목쉰 소리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바람같은 기도가 되어 ​ 내가 믿지 않은 사랑하지 않은 잃어버린 시간들을 울게 하고 있습니다 ​ 스산한 바람이 눈물을 뿌려 꽃도 피지 않은 당신 무덤가에 오면 ​ 살아서도 조금씩 내가 죽어 가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 당신이 누운 어둠의 골짜기 강 건너 저편엔 순간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