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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 부활절의 기쁨으로 > ​ 당신이 안 계신 빈 무덤 앞에서 죽음 같은 절망과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던 저에게 다시 살아오신 주님 ​ 이젠 저도 당신과 함께 다시 살게 된 기쁨을 감사드립니다 ​ 시들지 않는 이 기쁨을 날마다 새롭게 가꾸겠습니다 혼자서만 지니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누겠습니다 ​ 빈 무덤에 갇혀 있던 오래된 그리움을 꺼내 꽃다발로 엮어 들고 당신을 뵈오러 뛰어가겠습니다 ​ 이토록 설레는 반가움으로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저에게서 지난날의 불안과 두려움의 돌덩이는 멀리 치워 주십시오 ​ 죽음의 어둠을 넘어서 빛으로 살아오신 주님 산도 언덕도 나무도 풀포기도 당신을 반기며 알렐루야를 외치는 이날 ​ 다시 살아오신 당신께 살아 있는 저를 다시 바치오니 사랑으로 받아 주소서 기쁨의 향유를 온 세.. 더보기
< 부활의 시 > ​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고 봄바람, 봄 햇살을 마시며 새들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첫 노래로 봉헌하는 4월의 아침 ​ 이 아침, 저희는 기쁨의 수액을 뿜어내며 바삐 움직이는 부활의 나무들이 됩니다. ​ 죽음의 길을 걷던 저희에게 생명의 길이 되어 오시는 주님 오랜 시간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 힘없이 누워 있던 저희에게 생명의 아침으로 오시는 주님 ​ 당신을 믿으면서도 믿음이 흔들리고 당신께 희망을 두면서도 자주 용기를 잃고 초조하며 불안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온 저희는 샘이 없는 사막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 사소한 괴로움도 견뎌 내지 못하고 일상의 시간들을 무덤으로 만들며 우울하게 산 날이 많았습니다. ​ 선과 진리의 길에 충실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당신을 배반하고도 울 줄.. 더보기
< 오늘도 십자가 앞에 서면 > ​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성당의 십자가 앞에 서면 예기치 않은 기쁨과 평화가 피어오릅니다 ​ 말을 하면 향기가 달아날까 봐 안으로 밖으로 고요히 침묵하면 오늘도 십자가 앞에서 사랑을 배웁니다 ​ 날마다 이마에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십자 목걸이와 십자 반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작은 잊고 살았던 십자가의 의미 ​ 슬픔의 가시가 박힌 삶의 무게를 두려워 않고 받아 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 십자가에 숨어 있는 놀라운 빛의 기도 사랑의 승리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 그 누구를 위로하고 싶을 때 그 누구로부터 위로 받고 싶을 때 성당의 십자가 앞에 서면 죽음의 눈물도 부활의 웃음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은총이여 ​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어리석음을 몸으로.. 더보기
<잎사귀 명상> ​ 저희성당 담밑에 자리한 명자꽃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詩가 되어 살아온다 ​ 둥굴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있다 ​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 이해인 더보기
<바람의 시> ​ 바람이 부네 내 혼에 불을 놓으며 바람이 부네 ​ 영원을 약속하던 그대의 푸른 목소리도 바람으로 감겨오네 ​ 바다 안에 탄생한 내 이름을 부르며 내 목에 감기는 바람 이승의 빛과 어둠 사이를 오늘도 바람이 부네 ​ 당신을 몰랐다면 너무 막막해서 내가 떠났을 세상 이 마음에 적막한 불을 붙이며 바람이 부네 ​ 그대가 바람이어서 나도 바람이 되는 기쁨 꿈을 꾸네 바람으로 길을 가네 바람으로 ​ - 이해인 더보기
< 하느님 당신은 > ​ 하느님 당신은 ! 나에게서 당신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가난뱅이 여인 ​ 나에게 당신을 옷 입히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궁전의 여인 ​ 하느님 ! 아무래도 당신은 기적의 신(神)입니다 ​ 보이지 않는 당신이 순간마다 내 안에 살아 오시니 내가 감히 당신을 사랑하다니 ​ 당신은 물입니까 ? 당신은 불입니까 ? 당신은 바람입니까 ? 사랑하는 자에게만 사랑으로 탄생하는 ​ 사랑의 신이시여! 가장 짧은 말로 가장 깊은 기도를 바치게 하소서 , ​ - 이해인 수녀 ​ 본명 이명숙 1945년 강원 양구 출생 1970년 [소년]지에 동시 '하늘', ' 아침' 등으로 추천 1981년 제9회 새싹 문학상 1985년 제2회 여성동아 대상 1998년 제6회 부산여성 문학상 2004년 제.. 더보기
< 봄 인사 > ​ 새소리 들으며 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봄 인사 드립니다 ​ 계절의 겨울 마음의 겨울 겨울을 견디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까치가 나무 꼭대기에 집 짓는 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 다시 시작하자 높이 올라가자 ​ 절망으로 내려가고 싶을 때 우울하게 가라앉고 싶을 때 ​ 모든 이를 골고구 비추어주는 봄 햇살에 언 마음을 녹이며 당신께 인사를 전합니다 햇살이야말로 사랑의 인사입니다 ​ - 이해인 중에서 ​ 더보기
< 시간의 선물 > ​ 내가 살아 있기에 새롭게 만나는 시간의 얼굴 오늘도 나와 함께 일어나 초록빛 새옷을 입고 활짝 웃고 있네요 ​ 하루를 시작하여 세수하는 나의 얼굴 위에도 아침 인사를 나누는 식구들의 목소리에도 길을 나서는 나의 신발 위에도 시간은 가만히 앉아 어서 사랑하라고 나를 재촉하네요 ​ 살아서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가슴 뛰는 선물임을 몰랐네요. - 이해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