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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

(히브리4.1-5.11.마르2.1-12)

“애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겠지만, 고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줍시다!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치유의 은총을 입은 중풍 병자를 바라보며 제 자신의 발밑도 내려다보게 됩니다. 오랜 세월 중풍으로 온몸이 경직되고 마비된 채 살아온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낫게 해주겠다!’가 아니라, “애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코 복음 2장 5절)였습니다.

중풍 병자는 몸이 아프기 전에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영혼과 정신이 아팠던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강하게 억눌리고 짓눌려, 마음이 마비되고 몸이 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고 죄일 수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저 역시 오랜 세월 홀린 듯이 무엇인가로부터 억압받고 구속받고 마비되어 살아왔습니다.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강박 관념 속에 스스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이 늘 지지부진하고 부자유스러웠습니다. 이런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말씀을 건네십니다.

“애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오늘 우리는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는지? 우리를 속박하고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완벽주의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어떤 한 사람 때문에 온몸과 마음이 마비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때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깊은 후회나 상처, 트라우마로 인해 온 몸이 경직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자유로움의 원천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우리 각자가 그 무엇에도 억눌리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갈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상처로부터, 죄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부조리한 제도나 관습으로부터, 비인간적인 조건으로부터...

예수님께서는 단기간에 걸친 증상치료가 아니라 심층적인 원인 치료를 행하셨습니다.

사목자인 동시에 치유자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기적같은 능력을 기대합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완벽한 해결책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에게는 그런 역량이 없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처럼 우선 근본적인 치료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대하는 시선을 바꾸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겠지만, 고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대 죄인들이며, 중증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조건 속에서도 하느님 현존 안에서 기쁘고 충만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동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심각한 고통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까이 늘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고무하고 격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