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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히브6.10-20.마르2.23-28)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가듯이 끊임없이 사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보다 주님께 가까이 다가서고, 보다 주님을 깊이 느끼고, 보다 주님을 잘 따르기 위해 깊은 광야나 사막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메시아 오심을 준비했던 구약 시대 마지막 대예언자로서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잇는 가교 역할에 충실했던 세례자 요한도 깊은 유다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최소한의 옷을 걸치고,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며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직전 유다 광야로 들어가셔서 홀로 40일간의 대피정을 실시하셨습니다. 더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 위해 단식을 하셨는데, 적당한 단식이 아니라 철저한 단식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안토니오 아빠스를 비롯한 사막의 교부들 역시 현란하고 요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깊은 사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냥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간 축척해 두었던 재물이며 학식이며 명성이며 사회적 기반이며...모두를 내려놓고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훌훌 털고 혈혈단신으로 아무런 미련도 없이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는 은수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멋있다, 쿨하다고 박수칠 수도 있겠습니다. 사막 생활의 낭만도 없지 않았습니다. 까마득한 사막 저 너머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라든지, 서녁 하늘을 장엄하게 물들이는 일몰 시간에는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또 어떤가요? 캄캄한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의 잔치가 벌어지겠지요. 인간 세상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손에 잡힐 듯이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낮의 더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강풍이라도 불어오면 함께 날아오는 모래로 인해 눈을 제대로 못뜰 지경입니다. 건기가 되면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굶주림과 목마름은 기본이었습니다.

은수자들이 깊은 사막으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온전히 주님을 추종하기 위해서, 오로지 주님만 선택하기 위해서, 하루 온종일 주님 현존 속에 살아 숨 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집트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던 안토니오는 일찍이 부모와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다음과 같은 복음말씀을 듣게 됩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안토니오는 전율과도 같은 느낌을 받은 동시에 그 말씀은 바로 자신에게 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안토니오는 37만평이나 되는 비옥한 토지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외롭고도 허전한 길, 쓸쓸하고도 고통스런 사막의 길-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안토니오의 위대함은 쉼 없는 기도생활과 한결같은 겸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토니오는 한 은둔소에서만 20년간 칩거하며 기도생활에 전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모른척하며 그 오랜 세월 하느님과의 만남에만 몰두하셨습니다.

안토니오에게 하느님 이외의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떠받들었지만 거기에 조금도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안토니오의 주옥같은 권고 말씀이 오늘 하루 삶의 양식이 되길 빕니다.

“물고기가 마른 땅에 머물러 있으면 죽듯이 수도자들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되면 정신이 해이해집니다. 그러니 우리 수도자들은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가듯이 끊임없이 사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 부단히 산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