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
(이사 2,1-5 . 로마 10,9-18. 마태 28,16-20)
<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
시몬 체코비츠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 (1758년)
관습과 풍속 존중하는 선교 지침
내 의지와 뜻 관철하려 하지 말고
주님 말씀 전하는 일에 집중하길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 주관하는 선교사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오전, 오후 교육이 진행됐는데요. 한 번은 오후 시간에 외국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하신 신부님이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를 강조하셨는데요. 그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선교사 지침서’라는 내용이 담긴 프린트를 한 장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예식이나 관습과 풍속이 우리 신앙(믿을 교리)과 윤리에 분명하게 위배되지 않는 한 그 나라 사람들에게 그들의 예식과 관습, 풍속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들을 설득 시키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프랑스나 스페인, 이태리 및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무리한 일입니다. 절대로 어느 나라에서 하고 있는 것을 남의 나라에 도입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신앙을 전하도록 하십시오.’
우리나라에서 하던 것을 우월한 것으로 생각해 다른 나라 상황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를 주입하거나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선교의 기본적인 마인드라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내용일 텐데요. 실제로 선교에 나간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부님 말씀에 의하면, 보통은 이와 딱 정반대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내가 하던 대로 현지에서 하던 것을 바꾸려고 하거나, 그들이 서서히 변화돼 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재촉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이 강의 중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시지는 않았는데요. 가톨릭평화방송에 ‘미션’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니까, 그 신부님이 선교하시면서 경험한 내용에 대해서 인터뷰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칠레에 와서 선교를 하는데 장례 때 사람들이 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고, 앉아 있다가 가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 좋은 장례 기도가 있다’고 하면서 연도를 가르쳐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공소회장쯤 되는 분의 가족이 돌아가셨는데, 공소회장님이 오시더니 하시는 이야기가 ‘신부님 부탁인데 저희 장례 때는 조용히 계셔 주십시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서운하기도 하고 공소회장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셔서 짜증을 좀 냈더니, 자신들이 잘 해 오던 전통을 이해하고 받아달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들은 서로가 시골에서 다 알던 사람이고 가까이 함께 살던 분들이다 보니까, 그 앞에 와서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고 대화하면서 마지막으로 보내드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신부님은 이런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앉아 있는 거고, 마지막으로 ‘잘 가라, 아름다웠다’ 하고 기도하는 것인데, 그보다 아름다운 기도가 있겠어요? 제가 여기서 선교사로 산다는 거, 가르친다는 거, 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들이 제 그런 모습도 참아 주고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평생 감사하고 평생 배우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자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에 시골 본당에 있어서인지 두 가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농번기’와 ‘물 때’입니다. 제가 도시에 살다가 시골에 가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려고 했을까요?, 뜯어고치려 했을까요?
저는 뜯어고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농번기 때 바쁜 신자들이 미사에 덜 나오고 모임에 빠지고 반모임을 안 한다고 단죄하기도 했고, 그러한 모습을 뜯어고치려고도 했습니다. 그들이 서서히 변화돼 가는 것을 기다려 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바꾸려 했습니다. 또 제 임기 때 모든 걸 해야 하는 것처럼 욕심을 내고, 급하게 내 의지와 뜻을 실현시키려 했습니다.
또 어느 순간부터 신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고 중간에 자르거나, “일단은, 어쨌든” 하면서 제 방식을 주장하는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시골 본당도 본당만의 전통이 있고 문화가 있고 해 오던 것들이 있을 텐데요. 그것들을 충분히 알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함으로 뭔가 주입하고 바꾸고 가르치려고 했던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죽 떠오르면서 반성이 됐는데요. 강사 신부님은 마지막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선교지에 나가서 무엇보다도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고개가 끄덕여지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선교사 지침서’가 발표된 때가 1659년인데 그 이후로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시행착오의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지침서 내용을 다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주님의 메시지로 알아듣고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바라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마 그 내용은 선교지나 본당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나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또 성급하게 변화를 기대해 쉽게 좌절하고 실망하지는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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