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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餘白)
화선지 위에 글씨를 쓸 때
나는 여백을 중시한다
글씨로 가득 채우면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든다
삶을 깨우는 선현들의 화두를
붙들어도 여백이 없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글씨를 쓰면서 얻는 것은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맑은 찻잔에 솔잎을 얹으면
마음의 여백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비단 글을 쓸 때 뿐만 아니라
삶의 공간 요처마다
여백을 둘 수 있어야 한다
여백은 숨 쉴 공간이다
아무리 값나가는 골동품도
창고를 가득 메우면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가락을 타는 악기는
빈 공간과 뚫린 구멍 탓에
청아한 기능을 하고 있다
여백이 주는 축복이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고
무엇이든 가지려고만
하는 사람들은
모르긴 해도 여백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여백이야말로
삶의 양식이라는 것을
지천명(知天命)에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 이설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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