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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 회개하거든 무조건 용서하라 >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티토1.1-9.루카176.1-6)

                                     < 회개하거든 무조건 용서하라 >

요즘 군대에서는 사병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평일 일과 후와 휴일에는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정식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고, 올해 말까지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군 생활할 때는 소위 휴대전화 전에 많이 사용했던 삐삐도 있기 전이어서 무조건 공중전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중전화비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수신자 부담 통화’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집에 전화 한번 하고 싶어서 공중전화 앞에서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편하게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습니다.

신부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려고….”라면서 군대 다녀온 거의 모든 신부가 휴대전화 사용을 반대했습니다. 군대에만 충실해야지, 휴대전화가 있으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때 한 신부가 이런 말을 합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한 뒤에

탈영과 자살이 급격하게 줄었데.”

저 때의 군대 생활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군대는 옛날과 전혀 다른 새로운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이 휴대전화가 사람을 살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경험이 무조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또 환경의 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강조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의 사람은 무조건 율법 중심이었지요.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법의 세세한 규정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것이 하느님 중심의 삶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탈리오 법칙으로, 피해자가 받은 피해 정도와 동일한 손해를 가해자에게 내리는 보복 법칙이 있었습니다.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아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수하지 말고 그 대신 용서하라는 새 윤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용서는 한계가 없는 것으로, 회개하거든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먼저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사랑을 통해서 더욱 굳건해집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타인이 겪었을 고통을 내 것인 양 상상해 보며, 그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땎따지 기다리고 옆에 있어 주는 일이다(손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