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월요일
(티토1.1-9.루카176.1-6)
그는 마침내 평생토록 단 한 번도 분노하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로서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나 다른 사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는 다른 열두 사도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고, 함께 생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살아생전 직접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목격한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에 처해 질 때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오로 사도는 사도로서의 신원, 사명, 의무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티토서에서 어떤 사람이 사도요 참 목자인지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
교우들의 신앙을 성장시켜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람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
거만하지 않은 사람
쉽사리 화내지 않고 자제력을 갖춘 사람
과음하지 않고 난폭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
손님을 환대하는 사람
선을 사랑하는 사람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
하나하나 점검해보니 저는 사도요 목자로서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과음하지 않는 사람’이란 대목에서 크게 마음이 걸립니다. 환골탈태해야 할 부분입니다. ‘신중한 사람’이란 표현 앞에서도 많이 송구스럽습니다. 매사에 더 진지해지고 신중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쉽사리 화내지 않고 자제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부끄러움이 참으로 큽니다,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심하게 화를 냈던지, 얼마나 많은 경우 이성과 자제력을 상실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지...
한 사목자가 쉽사리 화내고 자제력을 상실할 때, 그가 담당하고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힘들게 되는지를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지도자가 수시로 분노를 터트릴 때, 그를 따르는 양들은 얼마나 불안해지고 당혹스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성인이 한 분 계십니다. 사랑과 온유의 박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입니다. 그 역시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 한 성격하셨더군요.
젊은 사제 시절 그는 개신교도들이 활개를 치던 샤블레 지방으로 선교를 떠납니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자 크게 분노를 합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싹 쓸어버릴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고, 연세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젊은 시절의 혈기로 저질렀던 과오를 크게 참회합니다. 동시에 열렬한 기도 생활과 더불어 비약적인 영적 성장을 이뤄냅니다.
그리고 어느날 더 이상 사사로운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외풍에도 깊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 년, 이 년, 십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분노하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였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토록 그를 흠모했고 존경했고 추종했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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