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티토2.1-8.11-14.루카17.7-10)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있습니다. 확진된 적 없는 사람을 만나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긴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확진 경험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확진 경험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코로나가 맞다’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가보고, 자기 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도 늘 ‘음성’입니다. 혹시 ‘슈퍼항체 보유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매일 미사와 안치 예식으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3년째 코로나 팬데믹 안에 살면서도 아직까지 확진 없이 건강하게 있다는 자체를 떠올려 보니 거의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는 “대인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 확진되지 않더라.”라고 농담하기도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지 않았던 저였기에 이렇게 확진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큰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이를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신 ‘내가 건강해서.’, ‘내가 조심해서.’라는 이유를 붙이면서, ‘나 때문에’라는 생각만 했었음을 반성합니다.
그 누구도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음을 이번 팬데믹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고, 또 감사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우리는 주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 뜻보다는 내 뜻을 더 내세우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 시대에 대한 이해를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온종일 밭에서 힘 빠지게 일하고 돌아와서 또 집안일을 해야 하고 배고픔을 참고 먼저 주인의 밥상을 차려야 하는 종이 등장합니다. 이를 보면 그가 노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노예는 이런 일들을 하기로 하고 고용된 것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주인은 주인대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분명히 악덕 주인일 것이고 신고 대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이와 같은 주인과 종의 관계는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너무 흔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배경으로 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는 하느님의 일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고, 내 일이 바쁘다고 하지 않고, 내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고, 내게 물질적인 이득이 없다면서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하느님의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하고 있었을까요? 주님 뜻보다 내 뜻을 더 내세우는 사람은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시련이란 꼭 방해 거리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발아래 놓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C.F 블렌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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