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전쟁은 인류의 패배 / 고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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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남부 마을에서 음악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 패러글라이더로 급습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대원들의 총기 난사, 순식간에 주검으로 널브러진 이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인질로 끌려간 수백 명, 이어 방공망을 뚫은 수천 발의 로켓 공격….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대반격, 졸지에 생때같은 가족과 집을 잃고 절규하는 팔레스타인인들, 피투성이 부상자들의 비명, 남쪽으로 대피하는 수십만 명의 행렬, 전면 봉쇄 속에 단수·단전으로 생지옥에 몰린 사람들….
개전 열흘째인 지난 16일(현지 시간) 현재 양측 사망자만 4000명을 넘겼다. 이스라엘 군의 지상전까지 앞두고 있어 사상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분명하다. 대살육이 따로 없다. 대피령으로 주민 230만 명 가운데 네 명 중 한 명꼴로 무작정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도 국경 봉쇄에 막혀 딱히 갈 곳이 없다.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꼴이다.
전쟁의 불똥은 전 세계로 튀고 있다. 헤즈볼라와 이란 등 주변국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확전의 암운마저 드리운다. 유다인-아랍인 대결구도 속에 친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맞불처럼 번지고 있다. 혐오범죄까지 기승을 부린다. 미국에서 70대 집주인이 세입자 팔레스타인 여섯 살 소년에게 칼부림으로 목숨을 앗았고, 소년의 엄마에게도 중상을 입혔다. “아랍인들이 싫어졌다”는 살인의 광기에 말문이 막힌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 사회의 필요악일까. 구약성경 창세기에 그 단어가 등장하는 것만 봐도 전쟁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전쟁 이론가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전쟁은 우리의 의지를 실현하려고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동으로 정치의 연속”(「전쟁론」 참조)이라고 설파했다. 전쟁의 참상을 생각하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제목 ‘인간 실격’이 떠오른다. 스토리와 맥락은 다르지만, 부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No Longer Human)가 ‘인류의 패배’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죽음과 파괴의 씨앗을 뿌릴 뿐이고, 증오와 복수를 증가시킵니다. 전쟁은 미래를 지우며 인류 전체의 패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쟁 중단과 평화 정착에 대한 호소가 귀에 쟁쟁하다. 교황은 연초에도 2년째 끝날 줄 모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겨냥해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를 규탄했다. 그때 전쟁의 원인으로 ‘죄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마르 7,17-23 참조)을 꼽았다. 이유야 어떻든 폭력은 폭력을,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며 인도주의의 위기다.
필자가 수학하는 가톨릭교리신학원 학우들도 삼삼오오 모여 입을 열었다. 분쟁의 빌미를 자초한 영국의 이중 플레이, 민족과 종교를 달리하는 양측의 끝장 대결, 거대한 방벽 속 좁은 땅에 갇힌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화제에 오른다. 게다가 양측이 쏟아내는 발표나 자료에 대해서도 편파성을 의심한다. 지난 17일 수백 명이 숨진 가자시티 병원 참사를 두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책임 떠넘기기가 대표적 사례다. 전쟁에 관한 한 당사자 모두 잘못이라고 했고,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연민을 느끼는 듯했다.
내 나라에서 터진 전쟁이 아니니 상관없다거나 안도할 수 있을까. 이런 때일수록 ‘착한 사마리아인’(루카 10,29-37 참조)이 돼야 마땅하다. 우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들의 고통과 비극에 마음 아파해야 한다.
조속한 종전을 위해 참회하는 절박함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세계인들과 연대해 전쟁과 폭력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자. 인도주의적 지원의 손길도 보태야 한다. 이쪽저쪽 가릴 것 없이 무고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하느님의 모상,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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