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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산의 정기(精氣)

산의 정기(精氣)

금세기 전반기를 살다가 간 영국의 등산가이며

저술가인 F.S. 스마이드는 <산의 정기>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훈련으로 정복되어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한 부분이며

만물에 이어진 아름다움과 장엄이다.

산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배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이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자연과의 친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정상에 도달하는 것만이 등산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날의 계획 중 한가닥 황금의 실일 뿐이다.

마치 군인들이 일찍이 다른 군인들이 점령한 도시를

짓밟듯이 정상을 짓밟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방문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신은 비단 등산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에도 해당될 것이다.

어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데에 삶의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산마루가 아니고

산마루에 도달하는 그 일(과정)이다.

스마이드의 표현을 빌자면,

왕관이 아니라 왕국이라는 것.

등산의 기쁨은 내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서,

차분히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산의 향기를 맡고,

산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있다.

그리고 정상에서의 침묵은

가장 느긋하고 거룩한 휴식임을 알아야 한다.

갖은 고생과 시련을 이겨 내면서 이 풍진 세상을

다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저녁노을 앞에서

할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자취를 되돌아볼 뿐이지.

- 법정 스님 < 맑고 향기롭게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