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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곰삭한 맛

<그 겨울의 시>

 

<그 겨울의 시>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그 겨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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