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서 온 편지>1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사랑 안에서 벗님들께
하늘나라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10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다들 평안하시겠지요?
‘하늘나라 기차’를 타고 세상을 떠나올 때야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저는 요즘 아주 편안하게 지낸답니다.
그런데 이곳 하늘나라까지
“살기가 버겁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경제적 어려움에 세대 갈등이나 계층 간 반목도 깊고,
빈부격차도 심화됐다고요?
예나 제나 살기 힘든 건 여전한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훨씬 더 엄혹했고
힘겨웠던 세월을 견뎠습니다.
일제 강점과 분단, 6ㆍ25라는 비극적 전쟁,
독재와 반독재로 갈려 반목하던
시대도 ‘살아내야’ 했지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상황이 낫습니다.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고(에페 1,12)
용기를 내세요.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이기게 해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착한 사마리아인의 사랑,
복음적 가난입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오늘 밤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면,
필연코 가난한 쪽방촌이나 재개발구역,
달동네나 시골, 아니면 병원이나 감옥처럼
구원을 갈망하며
흐느끼는 이들에게 오실 테니까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교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교회의 심장과 손발에
십자가의 상흔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 속에,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
더는 낮아질 데가 없을 때까지
낮아지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그 진리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남북관계가
다시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70여 년간 분단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은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나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열쇠는 기도입니다.
“미워하는 자와 하나가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용서와 화해,
일치와 평화의 도구가 되고
‘기도의 연대’를 이룹시다.
사랑은 용서에서부터 비롯합니다.
우리의 사랑, 그 온전한 실천만이
하느님의 평화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사랑을 아낀 탓에 ‘사랑에 허기진’
형제자매들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세상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벗님들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울 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와 함께 일하십시오.
때로 사랑은 고통스러울 수도,
배반당할 수도,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은 삶의 원천이고 희망입니다.
조건을 두지 말고 사랑합시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에 붙어 있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가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주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할 말은 끝이 없지만, 더 적지 못합니다.
벗님들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삶을 누리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
기도 중에 우리 만납시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감사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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