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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 겨울은 침묵을 익히는 계절 >

< 겨울은 침묵을 익히는 계절 >

겨울은

우리 모두를

뿌리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날들을 잠재우고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그런 계절이다.

그 동안에 걸쳤던

얼마쯤의 허영과 허세와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분수와

속얼굴을 들여다 보는,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무들은 빈 가지인 채로 서 있다.

떨쳐버릴 것을 모두 떨쳐버리고

덤덤하게 서 있는 나무들,

그것은 마치 세월에

부대끼고 풍상에 시달린

우리 모두의 주름진 얼굴만 같다.

겨울의

문턱에 서니 저절로 지나온

자취가 뒤돌아보인다.

이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로 인해

적잖은 상처들을 입었다.

우리들의 의식은

그 동안 우리가 겪은

충격 때문에 말할 수 없이

얼룩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던

운동경기 중계소리로 인해

소음의 찌거기가

덕지덕지 끼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침묵에 귀를 기울일 때다.

소리에 찌든 우리들의 의식을,

소리의 뒤안길을 거닐게 함으로써

오염에서 헤어나게 해야 한다.

저 수목들의 빈 가지처럼,

허공에 귀를 열어

소리 없는 소리를

듣도록 해야 한다.

겨울의 빈 들녘처럼

우리들의 의식을

텅 비울 필요가 있다.

- 법정 스님 <물소리 바람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