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랑, 그리스도처럼>
몇 해 전의 보고에 의하면,
서울에 있는 가정 법원을 통하여 합의 이혼으로
헤어지는 부부가 매일 30쌍이 된다고 합니다.
하루에 30쌍이면 1년에 1만 쌍이 넘습니다.
그 밖에 재판에 의해 헤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우리 교회 법원에도
신자인데 부부간 불화가 극에 달하여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건수가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좋은 것이 사랑이 아닙니까?
그리고 서로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이가,
또 해야 하는 사이가
인간관계 중에서는 부부 관계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돼서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이요
모든 사랑의 근원이 되는 부부 사이에서
이렇게 사랑에 금이 가고 있습니까?
저는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결코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심이다'라고 합니다.
부부가 본래 혼인 서약을 할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병들 때나
평생토록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은 각자 자기 의사로 자유로운
선택 판단에 의해 결심함으로써 나온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이자
독일 복음 교회 목사이며 나치에 저항하다
순교한 본 회퍼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인에 있어 사랑이 서약을 지켜 주기보다는
혼인의 서약이 혼인의 사랑을 지켜준다."
우리는, 즉 부부는 사랑으로 결심했고,
사랑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어느 정도 사랑할 것인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종신토록 사랑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이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5장에서 부부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에 비교하며 말하면서
"남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또 아내 된 사람들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섬기듯
남편에게 순종하고 섬겨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요구하는 표현은
현대 여성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말씀하신 전체 취지는
남편이나 아내나 다 같이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은 젊은이에게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후
"그 계약은 어릴 때부터 다 잘 지켜 왔습니다" 라는
답을 청년으로부터 들으시고서,
"너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 지나친 요구같이 들리고
모든 사람들이 따를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떠나야 합니다. 부부관계도 같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비유에 보면
남편에게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본받아야 할 분이고,
그것은 곧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그리스도는 남편입니다.
그렇다면 남편 된 사람은 아내 사랑을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부 사랑은 이같이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부부를 위해 그리스도는 성체 성사 안에만 현존하지 않고
남편 안에 현존하시고 아내 안에 현존하십니다.
서로가 상대 보기를 그리스도 보듯이 해야 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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