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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겨자씨 한 알>

<겨자씨 한 알>

믿음은 무엇입니까?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은 사랑 자체이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우리 모두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정의,

평화와 행복이 충만한

하느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시고

영생에 살게 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의식·무의식중에

이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볼 때에

이런 것은 허황된 꿈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현실 사회의 부정과 불의, 인생의 부조리,

언제나 가진 자, 힘센 자가 이기고 가난한 자,

약한 자는 희생당하며, 거기다 인생은

시련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의가 꽃피고,

사랑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며,

평화가 다스리는 아름다운 세상이

반드시 이룩되리라는 것을 믿는 것은

부질없이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각자도

이유 없이 불행한 일을 당하고

고통을 겪을 때에는

하느님은 과연 계신는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계시며

그분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는 없으나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를 당신이 뜻하시는 영생에로 이끌어 가시고

또한 우리 안에 사랑과 정의의 나라를

이룩해 가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본시 하느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링은 무한히 크고

반드시 우리를 영생에, 사랑과 정의의 나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세상이 불의, 부정, 부조리로 가득하고

인생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정의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면 거기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불의와 부정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따라 선하게 살 이유도 없습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미친짓입니다.

때문에 사랑의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은 계셔야 하고,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 나라는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마태 12, 31-32)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력이 있고

그것은 시련과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큰 나무로 자라납니다.

겨자씨 만이 아니고 볍씨도 꽃씨도 같습니다.

들에는 벼가 심어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가을에 추수할 쌀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벼에서 쌀알이

주렁주렁 달릴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같이 하늘나라도 시작될 때에는

그렇게 미소하고 보이지 않으나

반드시 크게 자란다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우리 마음속에 뿌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어떻게 자라는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정성껏 간직하고 살면 그 말씀은

내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자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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