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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왜 절해유?

산사의 소방 훈련

산사의 소방 훈련

“불이야, 불이야!” 스님들의 고함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산사의 적막과 고요가 일순간에 깨진다. 각 처소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방에서 부리나케 나와 불이 난 곳으로 뛰어간다. 참선하는 선원,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계율을 공부하는 율원 대중 할 것 없이 전 대중이 모두 나온다. 10대의 어린 스님부터 주지 스님을 비롯한 어른 스님들까지 예외는 없다.

멀리 수미정상탑 근처에서 불이 났음을 알리는 연막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스님들의 손에는 곳곳에 비치되었던 소화기가 들려 있고 능숙한 동작으로 언제든지 분사할 준비를 마친다.

연막이 피어오르는 수미정상탑은 다름 아닌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장경판전 뒤! 장경판전과 수미정상탑까지 가는 길이 가파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스님들이 괴력을 발휘하면서 한달음에 내달린다. 이내 각 법당에서 화재 발생을 알리며 난타당했던 소종 소리가 멈추고, 종각에서 대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해인사 경내뿐만 아니라 가야산 전체에 흩어져 있는 암자에도 화재 발생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예불 시간을 제외하고는 큰스님 열반했을 때나 타종하는 대종 소리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려준다.

스님들은 각자 평소에 나눠 맡은 임무별로 흩어져 소임을 다한다. 최초 발견자는 즉시 소방서로 신고하고, 관광객과 참배객을 대피시킨다. 이내 스님들이 화재 발생 장소인 수미정상탑에 도착하면 평상시에 숙지한 소화기구 운용법을 활용해서 2인 1조가 되어 대형 방수포를 분사하기 시작한다.

하늘로 치솟는 방수포 물살이 땀범벅이 된 스님들 위로 쏟아져 내리면서 무더위를 잠시나마 시원하게 식혀준다. 이 와중에 응급처리반은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 스님들을 응급처치를 위해 이송한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미리 계획한 대로, 경판 운반조 스님들이 장경판전으로 이동해 팔만대장경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움직인다.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합천소방서를 비롯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인원들까지 합류해 진화 작업에 힘을 모은다. 이내 불길은 잡히고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잔불 확인 절차까지 진행하게 된다.

이상의 정경은 여름 안거 중에 실시되는 해인사의 소방 훈련 이야기이다. 해인사 대중 스님들은 계절을 불문하고 매년 분기별로 항상 소방 훈련을 정기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불시에도 진행한다.

이외에도 실제 훈련뿐만 아니라 스님들은 매년 단옷날이 되면, 도량 곳곳은 물론 가야산을 비롯한 주변 산의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으면서까지 화재로부터 해인사를 지켜주기를 발원하고 기도한다. 그만큼 화재로부터 팔만대장경을 지켜내기 위한 마음은 시간을 초월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해인사는 조선시대에만 무려 일곱 차례의 화재를 겪었다고 한다(지관 스님, <가야산해인사지>). 그 와중에 신기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거듭된 화재를 겪으면서도 대장경판만은 매번 무사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문헌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추측건대 아마도 화재 발생 시에 해인사의 스님들은 다른 전각이나 법당은 다 포기하더라도 장경판전만은 목숨을 걸고 화재 진압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에도 해인사 대중 스님들은 매번 반복되는 소방 훈련에 진심일 수밖에 없다.

이제 어느 해보다 길었던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시작되고 연이어 태풍이 찾아올 것이다. 올해는 또 어떤 재난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한여름에 진행되는 산사의 소방 훈련처럼 무더운 한여름에 겨울의 화재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재난에 꼼꼼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소방 훈련을 마치고 도반 스님들끼리 툇마루에 걸터앉아 매미 소리를 들으며 나눠 먹는 수박 맛이 유난히 달고 시원하다.

일상의 행복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우리 주변의 위험 요인을 미리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모두가 안전하고 평안한 여름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