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불사하는 대장부의 기개…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이셨다”
[기고 - 내 기억 속 자승 스님]
“지옥 마시고 극락 내쉬어야”…‘부처님법 전하는 데 온 삶’ 원력
스님 유지, 종립 동국대 전법으로 피어나…학생 4300여 명 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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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 총장은 “자승 스님은 내게 간절하고 커다란 원력, 그리고 숙고와 결단에 이어지는 실천행이며 개인적으로는 생의 심층부터 심오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부여자”라고 회고했다.
자승 스님의 ‘열반게’를 미리 보았다. 상월선원 천막결사 이후 인도 순례를 결행하기 전, 삼보사찰 천리순례 기간 중인 2021년 10월 5일 지리산 시암재를 지난 다음날이었다. 스님께서 부르시더니 당신이 직접 쓰신 활구를 보여주셨다.
本無生死 不無生死
本無所求 無緣亦無
(본무생사 불무생사
본무소구 무연역무)
본래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이 ‘열반게’는 스님의 유서 속에서 발견되어 2023년 11월 말에 공개되었지만 실제로는 입적 2년 전부터 예비되어 있었다. 한글본만 있는 게 아니라 한문본도 나란히 같이 있다는 게 특징이다. 스님께서는 인도순례를 마치고 ‘부처님 법 전합시다’를 선포하신 후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실 때 홀연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많은 사람을 황망하게 하셨다.
마지막 결구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구절은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과 함께 허망한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이 느낌은 원뜻과는 거리가 멀다. 스님께서 활구의 뜻을 직접 해설해 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자승 스님’의 원고 청탁을 받고 오래 고심하다가 스님의 ‘열반게’에 대한 내력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기로 했다.
“‘생사가 본래 없다는 것’은 생사 없는 도리를 알고[知無生死], 생사 없는 이치를 알고[了無生死], 생사 없는 도에 계합[契無生死]하는 것으로 이 삼무생사(三無生死)의 도리를 깨달아 아는 경지입니다.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의 경지란 본래 생사 없는 자리에서 한 번 더 진일보하는 겁니다. ‘본래 생사 없는 자리’는 공부의 구경처요, ‘생사 없는 곳이 없는 자리’는 구경처마저도 초월한 자리이니, 이 경지를 용무생사(用無生死)라 합니다.
용무생사란 생사 없는 자리에서 생사를 하는 것으로 마치 땅을 밟으면 흔적이 남지만 허공을 걸으면 흔적이 없듯이 억겁을 살면서도 불생불멸하는 자리가 용무생사의 자리요 생사 없는 곳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본무소구, 무연역무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이 텅 비어 더 이상 구할 것 없는 허심의 자리가 본무소구입니다. 만상삼라(萬像森羅)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나와는 무관하여 구할 것도 취할 것도 없어서 우주로 더불어 동일체(同一體)요, 만상(萬像)으로 더불어 동일지(同一志)니 법계가 일신(一身)이요 삼세가 일념이라, 이것이 소구자(所求者)도 소연경(所緣境)도 없는 청정무구(淸淨無垢)의 경지입니다.”
‘문자향 서권기’가 압도해 왔다. 당신의 창작인지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인용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내게 이 활구를 해설해 주시는 분은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승 스님이 아니었다. 대선객의 사자후 앞에서 나는 미적 충격을 받았다.
“땅이 노래하고 하늘이 춤추니 수미산이 사바세계로구나.”의 상월결사 오도송도 내공의 심연에서 길어 올려 가다듬은 언어의 사리였다. 심오한 도는 미적 형식을 통해 드러나고, 아름다움은 도의 경지에 이를 때 더욱 빛나는 듯했다. 나는 아직도 스님을 잘 알지 못하는구나!
스님은 궁극적 청정무구의 경지를 미리 준비하셨다. 생사를 초월한 대자유인이 되고자 하셨고 실제로 결행하셨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스님을 둘러싸고 많은 언어가 넘실거렸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저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확증 편향에 골몰하여 양극으로 치닫기 일쑤다.
균형과 조화와 중도의 어법이 설 자리가 비좁다.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언어의 홍수 속에서 스님은 좀처럼 묵묵부답이시다. 말을 아끼신다. 대신에, 숙고하고 인내하며 행동으로 직접 보이신다.
스님은 자연스레 선이 굵으셨다. 승가 내부로는 화합을 유지하셨고, 시대와 사회를 향한 메시지는 일관되게 무차평등이었다. 전례가 없는 극한의 방법으로 사부대중 수행을 함께하셨고, 불가능한 인도순례를 실천에 옮기셨다. 시대의 사명과 실천행을 다 이루고 난 뒤 스님은 사바세계를 훌쩍 넘어가셨다. 스님은 누구신가? 스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는 아직도 스님을 잘 모른다.
스님의 혜안 중 하나는 “불교 중흥이 동국 발전이요, 동국 발전이 불교 중흥”이라는 학교법인 동국대 건학위원회 창립 인사말씀 속에서 확인된다. 이는 종립대학에 큰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종단과 불교계 전체가 본격적으로 지원할 테니 스스로 발전하고, 그 힘으로 불교를 중흥시키는 데에 기여하라는 발원이자 당부이기도 했다.
“우리 대학생 한 천 명만이라도 모아서 스스로가 기획하고 준비해서 불교 중흥을 위한 영캠프를 열도록 해보세요.” 그러시고는 거짓말처럼, 마치 이 세상에 나투신 적도 없었던 것처럼, 홀연히 떠나셨다. 남은 스님들께서 성스러운 보살행을 하시도록 충격요법을 펼치시는 게 아닌가 했다.
상월선원 천막결사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스님은 말씀하셨다.
“상월결사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데 시간이 툭툭 끊어졌다. 입술을 깨물고, 목소리는 떨렸으며,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는 듯했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던 인욕보살이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슬픔을 자제하면서 펼쳐 보이는 극강의 법문이었다.
공감과 공명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감동과 감화의 벼락이 뼈를 때리는 것도 같았다. 뛰어난 큰 말씀은 오히려 어눌해 보인다[大辯若訥]고 했던가. 죽음을 불사하는 대장부의 기개 속에 처연한 아픔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입적 직후의 상황도 비슷했다. 충격과 곤혹스러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대학생 전법’이 정언명령처럼 다가왔다. 동국대 이사장 돈관 스님은 많은 고심 끝에 종립학교인 동국대부터 자승 스님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
올해 9월과 11월에 서울캠퍼스에서 2500명, 경주 와이즈캠퍼스에서 1800명이 수계법회를 여법하게 마쳤다. 자승 스님께서 바라시던 전국 대학생 1000명이 아니라 동국대 학생만으로도 4000명 이상이 부처님 곁으로 오게 되었다.
불기 2568년인 올해는 그런 점에서 한국불교 전법사에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해라고 기록할 만하다. 유지를 받든다는 게 무얼까.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실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자승 스님의 유지는 종립 동국대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스님은 인도순례 기간 중 ‘상월 108원력문’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 참회가 아닌 새로운 원력 정립으로 한국불교의 정신을 다시 세우려 하셨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국내에서 초안을 만들고 스님께서는 인도 현지에서 감수하셨다. 마지막 108번째의 발원 문장은 본인 스스로 만드셨다.
“부처님 법 전하는 데 온 삶을 바치겠습니다.”
‘온 삶’이란 무엇인가? 바친다는 건 무엇인가? 스님 입적하시고 난 뒤 이 문장이 가슴에 더욱 사무친다.
“행선할 때는 호흡을 잘하셔야 합니다. 걸음에 맞게 짧게 두 번 들이쉬고, 짧게 두 번 내쉬어도 되고, 길게 한 번씩 들이쉬고 내쉬는 방법도 있습니다.”
스님은 디테일에 강하셨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뒤에야 대중과 함께하셨다. 그때 스님은 호흡 바라밀에 대한 영감을 내게 주셨는데 문장을 지어보니 이렇다.
“우리가 바깥세상과 제일 많이 만나는 부분은 공기다. 산다는 건 공기 교환 작용이니 즉, 호흡하는 거다. 호흡은 공기를 들이마셔 산소를 취하고 폐에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매 순간 에너지 교환 작용이 인체 내외부에서 일어난다. 안의 것이 곧 바깥의 것이 되고, 바깥의 것이 곧 안의 것이 된다.
바깥의 수많은 육도 에너지를 들이마셔 여과한 다음 더 좋게 만들어서 내보내는 게 바람직한 수행이지 않을까?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지옥을 마시고 극락을 내쉬는 거다. 그러려면 내 몸 자체가 극락공장이어야 한다. 팔정도에 입각해서 살면 몸이 극락공장이 된다. 팔정도가 곧 극락 레시피다. 이 레시피가 세상 모두를 좋게 만든다.”
한 사람의 삶에는 형식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자승 스님은 단순하고 강렬한 형식의 전범이다. 간절하고 커다란 원력, 그리고 숙고와 결단에 이어지는 실천행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생의 심층에서부터 심오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부여자이기도 했다.
스님 가시고, 아니 계신 자리에 서슬 푸른 취모검이 홀로 빛난다.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김을 불면 머리카락이 잘리는 예리한 칼날이 취모검이란다.
남은 사람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부대중 모두 취모검을 다시 갈아 날을 세우는 정진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경우에도, 화합하는 게 최상승책이다.
윤재웅 동국대 총장
[1754호 / 2024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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