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밤>
좋은 음악은 무디어지거나 녹슬기 쉬운
인간의 감성을 맑고 투명하게 다스려준다.
진짜 예술가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나누어 주는 영원히 살아 숨쉬는 불멸의 혼이다.
이래서 인생은 덧없고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했는가.
출가 수행승에게는
마음 붙여 몸담아 사는 곳이
제 집이요 제 고향이다.
명절이라고 해서
찾아 나설 집과 고향이 따로 있지 않다.
세월 밖에서 살고자 하기 때문에
육신의 나이 또한 헤아리지 않는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갈 뿐이다.
거처만 하더라도
기댈 만하면 인연 따라 기대어 산다.
세상에서처럼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천하가 다 내 것이 아니면서도 또한 내 것일 수 있다.
구름이나 물처럼 흐르다가 잠시 멈추어 쉰다.
내 것을 지니게 되면 집착의 늪에 갇혀 흐름이 멈춘다.
그때는 이미 구름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이래서 수행자를 다른 마로 운수雲水라고도 한다.
무슨 인연으로 나는 이 산골의 오두막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묵은 둥지를 떠나
새롭게 시작한 오늘의 삶을 고마워한다.
언젠가는 이 껍데기도 벗어 버리고
훨훨 뿌리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인생의 그 섣달 그믐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아무 미련도 없이 나그네길을 훌쩍 떠나듯
그렇게 다음 생으로 떠나고 싶다.
나는 20년 남짓 홀로 사는 일에 이골이 나서,
이런 외떨어진 산중에서
홀로 지낼 때가 가장 홀가분하다.
내 삶이 가장 충만할때가
바로 이런 격리된 환경에서다.
물론 홀로 지내는 데는
여러가지 불편과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한데 모여 살면서
서로 아옹다옹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는 중생 놀음에 견주면,
그 어떤 불편과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무리를 지어 어울려 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없지 않지만,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시시콜콜한 일에
시간을 탕진하고 신경을 소모하는 일이 너무 아깝다.
나는 내 삶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 누구도 닮지 않으면서 내 식대로 살고자 한다.
그 질서에는 게으르지 않음과
검소함과 단순함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도 포함한다.
그리고 때로는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때로는 깊이깊이 잠기는
그 같은 삶의 리듬도 뒤따라야 한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해야 할 삶의 과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 각자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단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답게 사는 일이 긴요하다.
개체의 삶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섣달 그믐밤에 너무 된소리를 했는가?
-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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