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1요한1.5-2.2.마태2.13-18)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 도파민이 분비될까요? 사실 우리의 뇌는 아주 큰 욕심쟁입니다. 그래서 늘 ‘더 많이’를 추구합니다. 어제와 똑같은 삶에서는 결코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지금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면 도파민을 분비할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찾지 못하면 좌절과 절망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종종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이 있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시련에 그냥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불행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성당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 쉬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쳤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일을 계속 찾는 일,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도 너무나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저의 경우는 책 읽고 글 쓰는데 새로움을 얻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책을 계속 읽고 있고, 똑같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글을 쓰고 있으니 새로움을 얻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항상 똑같은 기도를 하고 있다면 기도 안에서 행복을 느낄까요? 아닙니다. 매번 다른 기도를 하는 사람만이 다양한 주님을 새롭게 느끼면서 행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안에만 살면 새로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순간의 만족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안에서 사는 사람은 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의 만족을 벗어나 계속된 만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헤로데 왕이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 사는 아기들을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왕의 위치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장차 유다의 왕이 되시리라는 예언을 듣고는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했기에, 이런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자기 왕위를 유지하려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과연 행복했을까요? 정적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잠시의 평화와 기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최악의 왕으로 기록될 뿐입니다. 당연히 하느님께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헤로데 왕처럼 세상의 기준만을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늘 새로움으로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는 주님의 기준인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큰 행복을 차지할 수 있게 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닫힌 문만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는 바람에 우리를 위해 이미 열려있던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헬렌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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