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1요한1.5-2.2.마태2.13-18)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이 무서운 시절의 소란이 끝나면...
리더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기 성찰과 기도, 희생과 봉사가 요청됩니다. 적절한 균형 감각과 보편적 상식을 지녀야 합니다. 작은 이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갑작스레 위로 툭 튀어 오르다 보니, 지금 나라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데올로기나 무속에 깊이 빠져 백성들을 혼돈상태에 빠트렸습니다. 멀쩡하던 사람들, 무고한 사람들을 단체로 죽음의 골짜기로 내몰았습니다.
엉뚱하거나 그릇된 지도자들은 존재 자체로 페스트나 콜레라보다 더 무섭습니다.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네로 황제가 그랬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무 부끄럽게도 그런 지도자가 한두명이 아니었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까? 그 한 사람의 그릇된 생각,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역시 똑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즉흥적이고, 또 얼마나 포악한지, 얼마나 앞뒤 생각 않고 행동하는지 깜짝 놀랄 지경입니다.
그는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것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머리 뚜껑이 활짝 열리다 보니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해서는 안 될 명령을 내렸습니다.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헤로데는 수많은 성채와 수로, 극장과 공공건축물을 건설하며 유다를 발전시켰지만, 말년에는 정치적 음모와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중심인물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헤로데에게는 10명의 아내가 있었으며, 14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 아들에게 권력을 몰아준 것이 아니라 세 명의 아들에게 영토를 골고루 상속해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세 명의 아들들은 모두 이복(異腹) 형제들이었습니다.
잔악하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났던 헤로데 가문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만, 헤로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순교한 세례자 요한이 대표적입니다.
헤로데로 인해 베들레헴 인근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은 모조리 목숨을 잃었습니다. 집집마다 흘러나오던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대신 아기 잃고 슬퍼하는 부모들의 통곡 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참으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죄한 아기들의 죽음이지만 성 쿠옷불트데우스 주교는 이렇게 아기들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어린 것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갔고 그들의 부모들은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보고 애통해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못하는 그 아기들을 자신의 합당한 증거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말을 못하면서도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사지를 움직여 투쟁할 힘이 없는 아기에 불과했지만 벌써 승리의 월계관을 얻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 없이 죽어간 아기 순교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개념 없는 지도자, 정신 나간 리더들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움직이는 것,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는 것,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노력이 아닐까요?
“이 무서운 시절의 소란이 끝나면 우리에게 확신의 시절을 주십시오. 이 기나긴 어둠 속의 방황이 끝나면, 우리로 하여금 밝은 햇빛 아래로 걷게 하십시오. 거짓의 굽은 길이 끝나면, 우리에게 당신 말씀의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께서 우리의 범죄를 씻어주실 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견디게 하여주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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