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요한1서5.14-21.요한2.1-11)
< 카나의 혼인 잔치 >
하느님 나라, 커다란 내 포도주잔에 양질의 포도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곳!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이웃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다들 바쁜 관계로 홀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피정 센터 넓은 주방이 엄청 춥더군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소시지를 썰고, 채소를 다듬다 보니, 무척이나 처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서품 30년 차가 다 되어가는데,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슬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생각하면 안 되지?’ 하면서 즉시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소시지 하나 썰면서 아이들 한명 한명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지만, 하느님께서 아버지 역할을, 성모님께서 어머니 역할을 해주십사고, 기도하면서 소시지를 썰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기쁘고 보람된 사도직으로 바뀌었습니다.
돈보스코가 그랬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늘 바빴습니다. 총 책임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재정적인 부분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틈만 나면 부자들, 귀부인들 식사 초대에 응해서, 그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해드리면서 후원을 끌어내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즉시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셨습니다. 선생님들 후배 살레시안들 격려하고 고무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집필도 해야 했고, 출판사도 운영했습니다.
자연스레 성당에 오래 앉아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자신만의 기도 방법을 찾았습니다. 일을 기도화한 것입니다. 일을 기도화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만나니 그 만남이 기도가 된 것입니다.
돈보스코를 만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했습니다. “돈보스코를 만나는 시간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같았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제가 준비한 보잘 것 없는 요리들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는 아이들, 설거지며 마무리 주방 청소까지 깔끔히 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모릅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제 몫을 해내는 모습에 제 마음은 즉시 풍성한 결실로 충만한 풍년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우세한 특징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풍성함이 아닐까요? 궁색하거나 결핍된 곳이 아니라 커다란 내 포도주잔에 양질의 포도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곳, 더 이상 굶주림이나 갈증이 존재하지 않는 곳, 아쉬움이나 불평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 말입니다.
포주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궁핍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니 즉시 상황은 반전됩니다. 여섯 개의 큰 돌 항아리에 가득 채워졌던 물이 순식간에 격조 높은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600리터의 포도주입니다. 포도주가 넘치도록 풍성한 것은 언젠가 맞이하게 될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과 행복,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상징하는 예표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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