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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의 삶

<삶과 죽음 선과 악은 둘이 아니고 하나>

<삶과 죽음 선과 악은 둘이 아니고 하나>

하느님과 나는 애시당초

본질부터 다른 것으로 알았다.

창조주인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하늘과 땅이 먼 것처럼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했다.

선과 악도 뚜렷이 구획 지어 보았으며,

의인이 따로 있고 죄인이 따로 있는 것으로 여겼다.

심지어 내 존재 하나도 쪼개어 받아들였으니,

속되고 욕정의 덩어리인 몸뚱어리와 순수하고

거룩한 정신 내지 영혼이 그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거룩함에, 선에 가 닿으려고

발버둥치다 떨어질 때마다 스스로가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다.

내 잣대에 맞지 않는, 내가 죄인이라고 여기는,

그런 이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결과는 참으로 초라했다.

내가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예수님의 보잘 것없는

이들을 사랑하라는 분부는 목에 박힌 가시처럼

아픔만 더했을 뿐이었다.

지극히 어리석은 탓이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도,

인간인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까닭이었다.

사도 요한의 손끝을 빌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제각기 일망정

같은 존재 원리, 같은 생명의 원리를

나눠 가지고 있으며, 나누임 없는

하나의 존재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우리네 모습을, 신비를 깊이 알아들어야 했다.

우리삶 속에서 부딪히는 온갖 갈등과 아픔

그리고 범하는 죄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생긴다.

깨달음을 얻으면 하나같이 모두 없어질 것들이다.

따라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의 칼날을

치켜세우려고 덤빌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이토록 큰 무명(無明)에 빠져들게 한

이원대립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

모든 것을 이원론적으로 쪼개 놓고서 그 중에서

좋고 아름답고 옳고 귀하다고 생각는 것들만

택하려고 하는 데서 온갖 불행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과 자연이 없이 하느님은 어떻게

당신 존재를 드러내겠으며,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원리를 좇지 않고서야

어찌 일순인들 생존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빛이 없는데 그림자가 생길 수 있겠으며,

그림자를 없애버리면 빛 또한 없어지지 않겠는가.

삶과 죽음, 선과 악 등 우리 눈에 대극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다.

그 하나 안에 온전한 생명이 놓여 있음을 봐야 한다.

- 유시찬 보나벤뚜라(예수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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