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쉬며 목 축일 샘-法頂

<가난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야> ​ 현대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탐욕의 시대'입니다. ​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채울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 하지만 세상은 더 차지하고 채우고 앞서며 이기는 것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때로는 가졌던 것을 줄 수도 있어야 하고, 차지했던 것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며, 채웠던 것을 텅 비울 수도 있어야 합니다. ​ 누구나 다 앞서면 어떻데 됩니까? 뒤처지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 이기기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 때로는 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삶을 조화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진 이 지구촌에서 100살도 못 사는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늘 공허한 상태입니다. ​ 자원은 한정.. 더보기
무소유] (31) 아름다움 - 낯모르는 누이들에게 무소유] (31) 아름다움 - 낯모르는 누이들에게 ​ 이 글을 읽어 줄 네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슬기롭고 아름다운 소녀이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슬기롭다는 것은 그 사실만 가지고도 커다란 보람이기 때문이다. ​ 일전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종로에 있는 제과점에 들른 일이 있다. 우리 이웃 자리에는 여학생이 대여섯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애들이 깔깔거리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는 슬퍼지려 했다. ​ 그 까닭은, 고1이나 2쯤 되는 소녀들의 대화치고는 너무 거칠고 야한 때문이었다. 우리 말고도 곁에는 다른 손님들이 꽤 있었는데 그 애들은 전혀 이웃을 가리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더구나. 그리고 말씨들이 어찌나 거친지 그대로 듣고 있을 수 없었다. ​ 말씨는 곧 그 사람의 인품을 드러.. 더보기
[무소유] (30) 살아 남은 자 [무소유] (30) 살아 남은 자 ​ ​ 요 며칠 사이에 뜰에는 초록빛 물감이 수런수런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 해 가을 이래 자취를 감추었던 빛깔이 다시 번지고 있다. 마른 땅에서 새 움이 트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기 만하다. 없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어느새 제철을 알아보고 물감을 푸는 것이다. ​ 어제는 건너 마을 양계장에서 계분을 사다가 우리 다래헌茶來軒 둘레의 화목에 묻어주었다. 역겨운 거름 냄새가 뿌리를 거쳐 줄기와 가지와 꽃망울에 이르면 달디단 5월의 향기로 변할 것이다. 대지의 조화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새봄의 흙 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흙의 촉감, 그것은 영원한 모성이다. ​ 거름을 묻으려고 흙을 파다가 문득 살아남은 자임을.. 더보기
무소유(29) 상면 무소유(29) 상면 ​ ​ 아무개를 아느냐고 할 때 "오, 그 사람? 잘 알고 말고. 나하곤 막역한 사이지. 거 학창시절엔 그렇고 그런 친군데...... ." 하면서 자기만큼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듯이 으시대는 사람이 간혹 있다. ​ 그러나 남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다양하고 미묘한 심층을 지닌 인간을 어떻게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인간은 저마다 혼자다. 설사 칫솔을 같이 쓸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 아무개를 안다고 할 때 우리는 그의 나타난 일부밖에 모르고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데서 우리는 불쑥 그와 마주칠 때가 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 나는 적연 선사寂然禪.. 더보기
< 삶 >​ ​ ​ ​지금 이 순간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하라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지금 이 순간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지금 이 순간 맘껏 즐거워하라 ​ 삶은 순간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후회 없이 사랑하고 행복하라 ​ 인생은 찰나의 연속... 미움받을 용기에서 읽었던 그 깨달음을 이 책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걸 하고, 가고 싶은 걸 가고, 즐거워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인생을 사는 의미 아닐까? ​ ​ 그러니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가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 ​ 길을 가다 보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선택의 순간이 온다 ​ ​무언가를 하다 보면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가 온다 ​ 이는 오르막이 .. 더보기
<아직도 우리에겐> ​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은 없다. 아직도 깊은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는, 카인의 후예들이 미쳐 날뛰던 6월, 언어와 풍습과 핏줄이 같은 겨레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던 악의 계절에도 꽃은 피는가. ​ 못다 핀 채 뚝뚝 져 버린 젊음들이, 그 젊은 넋들이 잠들어 있는 강 건너 마을 동작동. 거기 가보면 전쟁이 뭐라는 걸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된다. 그것도 남이 아닌 동족끼리의 싸움, 주의나 사상을 따지기 앞서 겨레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상처가 강 건너 마을만큼이나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6월이 오면 하루나 이틀쯤 겨우 연중 행사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마는 가벼운 기억들,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이 남긴 마지막 발음이 무엇이었던가를 우리는.. 더보기
<놓아두고 가기> ​ 내 지갑에는 자동차 운전면허증과 도로공사에서 발행한 고속도로 카드와 종이쪽에 적힌 몇 군데 전화번호 그리고 약간의 지폐가 들어 있다. 또 올해의 행동지침으로 적어 놓은 초록빛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연초에 밝힌 바 있듯이 금년의 내 행동지침은 이것이다. ​ 첫째, 고속 문화에서 탈피 둘째, 아낌없이 나누기 셋째,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기 그런데 최근에 와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넷째, 놓아두고 가기 ​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여름 안거 결제날. 우리들 영혼의 스승 조주 선사의 가풍을 이야기한 끝에 여러 대중 앞에서 내 결심을 밝혔다. ​ 길상사를 드나들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 간다. 그때마다 마음이 개운치 않고 아주 무겁다. ​ 말로는 무소유를 떠벌이면서 얻어 가는 것이 너무 많.. 더보기
<노년의 아름다움> ​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여름철 그 무더위도 처서를 고비로 한풀 꺾여 가을에 밀려간다. 순환의 법칙, 이 우주 질서가 지속되는 한 지구는 살아 숨쉰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그 때가 있다. ​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이 높아지고 물이 맑아져 차 맛도 새롭다. 어제 아침 가을에 어울리는 다기로 바꾸었다. 지난 해제날 보원요의 지헌(知軒) 님이 새로 빚어 가져온 찻잔에 초가을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모처럼 산중의 맑은 한적을 누렸다. ​ 아무리 뛰어난 예술 작품도 작가는 그 작품에 절반의 혼 밖에 불어넣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머지 절반의 혼은 소장자, 즉 그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잘 활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 ​ 때깔이 고운 이 찻잔은 보원요 나름의 기법으로 최근에 빚어진 것인데 찻잔의 크기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