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痛은 축복의 선물 썸네일형 리스트형 <기쁨과 슬픔의 조화로움> 인생엔 기쁨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슬픔에게만 지배당할 순 없습니다. 기쁨의 시간이 있다면 슬픔의 시간도 주어집니다. 슬픔의 시간이 있다면 기쁨의 시간도 주어질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도 없고 영원한 슬픔도 없습니다. 인생엔 기쁨과 슬픔의 곡선은 언제나 함께 공존합니다. 기쁠 때 슬픔을 생각하여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슬플 때 기쁨을 생각하여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슬픔이 있다는 것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기쁨 밑에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애통을 통과해야 기쁨이 오듯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 " (김응국 / 십자가 pp99-100 / 규장 2008) 기쁨은 슬픔을 통과할 때 그 기쁨의 깊이가 다하게 됩니다. 슬픔을 통고하지 않은 기쁨은 잠시 스쳐가.. 더보기 송봉모 신부 신작 「삶이 고통으로 휘청거릴 때」 송봉모 신부 신작 「삶이 고통으로 휘청거릴 때」 하느님께 모두 내어 맡길 때, 고통은 신비가 된다 삶의 역경 받아들이는 순간 비극 대신 창조적 힘을 얻는 지름길 알려주며 위로 건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고통은 지극히 사적이요 주관적이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상대방이 겪는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저자 송봉모 신부(토마스·예수회)는 오래전 고통을 주제로 책을 쓴 적이 있다. 「고통, 그 인간적인 것」이란 제목이었는데, 출간 후 가르치는 대학원생 한 명이 “신부님, 고통이 뭔지 정말 아세요? 그래서 그렇게 고통에 대해 길게 늘어놨나요?”라고 힐문했다.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때까지 힘겹게 살고 있던 학생에게 송봉모 신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난.. 더보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더보기 우리 죄의 무게로 넘어지신 예수님… 우리 죄의 무게로 넘어지신 예수님… 한 번, 두 번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넘어졌다. 우리 죄를 대신해 ‘몸소’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그분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죄가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른다. 골고타 언덕 수난의 길을 함께 걷는 사순 시기.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는 말씀을 새긴다.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며 회개의 용기를 내야 할 때다. 그때 비로소 주님 어깨를 짓누르던 십자가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알렐루야’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새미 은총의 .. 더보기 “돌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공감과 경청” “돌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공감과 경청” 성빈센트병원 임상사목교육센터 센터장 이희순 수녀와 슈퍼바이저 최은희 수녀 성빈센트병원 임상사목교육센터 센터장 이희순 수녀(오른쪽)와 슈퍼바이저 최은희 수녀가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몸이 아프면 상태에 맞게 계획을 세워 치료하는 것처럼 내면의 아픔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접근과 방법, 정서적 지지를 통해 치유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경험하는 순간마다 위안과 희망을 얻고, 몸과 마음 모두 쾌유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빈센트병원 임상사목교육센터 센터장 이희순 수녀와 교육을 맡는 슈퍼바이저 최은희 수녀는 ‘임상사목교육센터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수녀는 2006년.. 더보기 < 하느님 코드, 고통 > 고통, '하느님의 확성기' 고통, '하느님의 확성기' "남의 엉덩이에 난 종기보다 내 몸에 난 뾰루지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든 내가 고통을 겪는 당사자가 될 때 그 고통은 크게 보이고 심각하게 여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겪는 모든 형태의 고통마다 불가피하게 "왜?"라는 물음을 묻는다. 신비롭게도 이 물음은 인간을 하느님께 인도해 준다. 고통은 탁월한 '하느님 코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고통이라는 한계상황은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신호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한계 체험을 '최종적 포괄자'를 위한 암호라고 말했다. 고통의 극한 체험은 바로 '최종적 포괄자'인 하느님을 찾게 하는 구실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종적 포괄자'는 우리가 음식점 종업원 서비스.. 더보기 < 낫기를 원하느냐? > 질병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문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다. (앙드레지드 일기장에서) 질병 안에 어떤 신비가 담겨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신비의 깊은 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두 가지 상징이 있다. 첫 번째 상징은 질병을 우리에게 어떤 문을 열어 주는 열쇠로 비유한다. 그 문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열 수 없었던 문 질병으로 비로소 열리게 되는 문 곧 자아 인식과 자아 발견을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질병이란 열쇠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영역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는 그만큼 다른 사람이 된다. 곧 우리는 성숙해지고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된다. 괴테도 “지금까지 나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없었던 것을 나는 질병을 .. 더보기 < 자신에게 주어진 존재가치 > 때로는 산다는 것이 힘에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 혼자 이런 시련을 겪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세상을 한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무수히도 어려운 시절을 이겨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나에게 시련이 있다면 그 또한 얼마의 세월이 지난 뒤에 지금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연 속에 시달림으로 인해서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시련이란 것은 그냥 시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나를 성장하게끔 하시고 많은 주위를 통해서 나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셨습니다. 미..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