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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의 삶

(치유의 성사) -고해성사(상.하) [교회상식 교리상식] ​ (치유의 성사) -고해성사(상.하) 일곱 성사 중에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치유의 성사라고 부릅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육신 질병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치유와 구원 활동이 성령의 힘으로 교회 안에서 계속 이뤄지도록 하셨고, 이를 성사적으로 거행하는 것이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이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고해성사란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써 사랑이신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느님 백성인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칩니다. 따라서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고 교회와 친교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죄의 용서와 친교 회복을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거행하는 것이 고해성사입니다. ​ 고해성사는 성사를 받는 사람의 회개와 참회를 전제로 하기에 회.. 더보기
하느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셨다(둘) 하느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셨다(둘) ​ 나는 하느님께 나의 오만을 없애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오만은 내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나는 하느님께 인내를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인내는 고난의 산물이라고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나는 하느님께 행복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은총을 줄 뿐이지 행복은 너에게 달려있다고 말씀하셨다. ​ 나는 하느님께 나의 영혼을 성숙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NO"라고 말씀하시며 성장은 네 스스로 하는 것이고 나는 네가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가지를.. 더보기
<신앙인은 웃음을 머금고 살아야> “웃음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웃음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교 사상가 칼라너는 “유머가 없는 신학자는 훌륭한 신학자도, 참된 인간도 아니라고“ 했다. ​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생생한 인간이다” ​ 웃음은 인간 생동감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생생한 웃음을 짓는 인간은 하느님의 참된 영광인 것이다. ​ 자신의 명랑한 현존으로 인간에게 친절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 사람에게 있어서는 웃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칭송하는 것이다. ​ - 안셀름 그륀 신부 ​ 더보기
<당신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 낡고도 흠이 있는 오래된 바이올린 하나가 있었습니다. ​ 그래서 경매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는 웃으며 그것을 집어 들고서 소리쳤습니다. "자, 누구든지 이 헌 바이올린을 입찰하실 분은 말씀하십시오." ​ "1달러요." "예, 1달러 있습니다." "2달러요." "예, 2달러 좋습니다." ​ 그 때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 바이올린의 활을 집어 들었습니다. ​ 그러고는 그 낡은 바아올린의 먼지를 툭툭 털고 느슨한 줄을 조이고는 맑고도 감미로운 멜로디로 마치 천사가 노래하듯 황홀한 연주를 하였습니다. ​ 거기 모인 사람들은 순간 감동했고, 연주가 끝나자 그 경매인은 나직이 말했습니다. ​ "이제 다시 이 오래된 바이올린을 경매할까요?.. 더보기
사제에게 사죄권 있지만 용서의 주체는 ‘하느님’ 사제에게 사죄권 있지만 용서의 주체는 ‘하느님’ 고해소는 고해자에게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사제들에게는 사죄의 권한을 지닌 교회의 직무를 수행하는 봉사의 자리이기도 하다. OSV 하느님만이 용서하실 수 있는 죄를 사제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요? ​ 개신교는 천주교의 고해성사를 두고 죄에 대한 용서는 하느님께 속한 것인데 어떻게 한낱 인간일 뿐인 신부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대속의 공로이기에, 그분을 믿고 직접 그분께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하느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 더보기
평신도 주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갑시다” 평신도 주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갑시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 [앵커] 이번 주일(12일)은 제56회 평신도 주일입니다.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갑시다’란 제목의 평신도 주일 강론 자료를 발표했는데요. ​ 주요 내용을 서종빈 기자가 전합니다. ​ [기자] 평신도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킵니다.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의의 강론 자료는 평신도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을 되새기며 시작합니다. ​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나라를 온 세상으로 넓히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참여시키며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이 실제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 이어 시노드 역사상 처음으로 .. 더보기
죄를 사한다는 ‘면죄부’는 잘못된 용어 죄를 사한다는 ‘면죄부’는 잘못된 용어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27) 면죄부와 대사 ​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용서의 권한을 교회에 위임하셨기에 고해성사를 통하여 사제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선포하더라도 죄에 따른 벌은 고해자 스스로가 보속 행위를 통하여 갚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진은 미국 뉴욕 성 요한 성당에 있는 모자이크 벽화로, 네포무크의 성 요한이 고해성사를 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OSV 개신교가 말하는 ‘면죄부’와 천주교가 가르치는 ‘대사’는 어떻게 다른가요? ​ ​ 흔히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된 대사부에 대한 용어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적지 않은 개신교는 16세기에 가톨릭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짓기 위하여 기금을 모으면서 죄를 용서해 주는 면죄부를 남용.. 더보기
<성경은 읽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 ​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 하느님의 소리는 당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솔직해집시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느님 앞에 우리는 참으로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합시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신앙은 헛된 신앙입니다. ​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눈을 돌릴까요? ​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언제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깨닫도록 하시기.. 더보기